국내외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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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 동향21세기 네오파시즘과 기후위기


미카엘 뢰비(Michael Löwy)는 프랑스-브라질계 사회학자로 파리 국립과학연구센터(National Centre of Scientific Research)의 명예 연구책임자이며, 저서로는 <생태사회주의: 자본주의 재앙에 대한 급진적 대안>(Ecosocialism: A radical alternative to capitalist catastrophe) 등이 있다. 최근 그가 Amandla!(2026년 3월 16일)에 작성한 “지구적 현상으로서 극우: 생태사회주의 대안(The far right as a global phenomenon: the ecosocialist alternative)”(링크)의 주요 내용을 옮긴다. 참고로 리처드 시모어(Richard Seymour)의 <재난 민족주의: 자유 문명의 몰락>(Disaster Nationalism:The Downfall of Liberal Civilization(Verso, 2024)과 박지형의 <왜 극우는 기후위기를 부정하는가>(이음, 2026)도 함께 살펴보면 좋겠다. <By 이정필, [ ]는 편집자 주>


최근 전 세계적으로 반동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그리고/또는 파시스트적인 극우 운동의 급격한 부상을 목격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세계 절반의 국가를 통치하고 있는데, 미국의 트럼프, 인도의 모디, 헝가리의 오르반, 터키의 에르도안, 이탈리아의 멜로니,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그리고 최근 아르헨티나의 밀레이 등이 대표적이다. 브라질의 보우소나루가 최근까지 집권했으며, 프랑스의 국민연합,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 칠레 공화당의 카스트 등이 유력한 집권 후보로 거론되기도 한다. 러시아의 푸틴 정권 또한 이러한 모델과 가깝다.

각 국가에서 극우파는 저마다의 특성을 보이는데, 유럽, 미국, 인도 등 많은 경우 적, 즉 희생양은 무슬림이나 이민자이다.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는 기독교인, 유대인, 야지디교도 같은 종교적 소수자가 그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혐오적 인종주의가 지배적이며, 다른 경우에서는 종교적 근본주의나 좌파, 페미니즘,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가 두드러진다.

이러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혹은 모든 극우 운동이 공유하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권위주의, 통합적 민족주의(독일 제일주의(Deutschland über alles),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무엇보다 위의 브라질 제일주의(O Brasil acima de tudo) 등), 종교적 또는 인종적 불관용, 그리고 사회 문제와 범죄에 대한 유일한 대응책으로 경찰·군사 폭력을 들 수 있다. 이들을 파시스트나 준파시스트(semi-fascist)로 규정하는 것은 일부에게는 적절할 수 있으나 모두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한편, [<좌파의 멜랑콜리>(Left-wing Melancholia>(2021) 저자인] 엔조 트라베르소(Enzo Traverso)는 포스트 파시즘(post-fascism)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Post-Fascism: Facism as Trans-Historical Concept, Crisis and Critique, 11(1), 2024 (링크)). 반면 미카엘 뢰비는 21세기 극우파의 연속성과 새로움을 동시에 설명하기 위해서는 네오파시즘(neo-fascism) 개념이 적절하다고 제안한다.


네오파시즘이지 포퓰리즘이 아니다

일부 정치학자와 언론, 심지어 일부 좌파조차 포퓰리즘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데, 이는 혼란을 줄 뿐이다. 1930년대부터 1960년대 사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이 용어가 브라질의 바르가스주의(Vargasism),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Peronism) 등 비교적 명확한 대상을 지칭했던 것과 달리, 1990년대 이후 유럽에서의 사용은 점점 더 모호하고 불분명해졌다.

포퓰리즘은 “엘리트에 맞서 민중의 편에 서는 정치적 입장”으로 정의되지만, 이는 거의 모든 정치 운동이나 정당에 해당할 수 있는 말이다. 이 유사 개념(pseudo-concept)을 극우 정당에 적용하는 것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그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인종주의, 외국인 혐오, 파시즘, 극우와 같이 위법적 의미를 갖는 용어들을 교묘히 피함으로써 그들을 수용 가능하게 하거나 심지어 호감 가는 존재로 만든다. 또한 포퓰리즘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그들에 의해 극우와 급진 좌파를 하나로 묶어버리는 의도적인 기만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자유주의 정책이나 유럽연합 등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이들을 각각 우파 포퓰리즘과 좌파 포퓰리즘이라 규정해 버린다.

 

기후변화 부정주의

이들 네오파시즘 정부나 운동 대다수에서 발견되는 공통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수정주의(revisionism)가 아닌] 부정주의(negationism)이다. 즉, 생태위기와 기후변화를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압도적인 과학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지구온난화라는 현실을 계속해서 부정하거나 단순히 무시한다. 도널드 트럼프는 이런 흐름의 가장 목소리 높고 저속한 지지자일 뿐이며, 이는 단순한 이데올로기를 넘어 생태학살적 실천(ecocidal praxis)이다.

이 점은 화석연료의 무제한적 개발에 전적으로 몰두하고 있는 트럼프에 의해 다시 한번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자살적 정치는 석유, 석탄, 가스, 화학, 플라스틱, 자동차 및 항공기 생산 등과 연결된 자본 분파, 즉 화석 과두제(fossil oligarchy)의 이익을 대변한다. 이들의 근시안적인 관점은 오로지 즉각적인 이윤 창출과 자본 축적의 기회에만 매몰되어 있다.

 

1930년대로의 회귀인가?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과거와 유사점이나 유사성을 찾을 수는 있겠지만, 현재의 현상은 과거의 모델과는 상당히 다르다. 무엇보다도 과거 세계 대전 직전 시기에 필적할 만한 전체주의 국가가 아직은 없다. 파시즘에 대한 고전 마르크스주의 분석은 이를 노동 운동이 제기한 혁명적 위협에 대해 소부르주아지의 지지를 받은 거대 자본이 보인 반동으로 정의했다. 과연 이러한 해석이 1920년대와 1930년대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에서 파시즘이 부상한 이유를 진정으로 설명하는지는 의문이다. 어찌 됐든, 그 어디에도 혁명적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이러한 분석은 적절하지 않다.

과거의 파시즘과는 또 다른 중대한 차이점들이 존재한다. 네오파시즘 정권들은 기업-국가 경제 모델(corporate-national economies)이 아닌 신자유주의에 몰두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1930년대보다 훨씬 더 거대한 규모로 생태학살적 활동에 가담하고 있다.

 

충분하지 못한 설명들

세계 각국이나 지역 특유의 모순이 표현된 다양한 현상들에 대해 하나의 일반적인 설명을 제시하는 건 어렵다. 우선 거부해야 할 한 가지 설명은, 네오파시즘이 미국과 유럽 등지의 이민 물결과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이주민은 인종차별적이고 외국인 혐오적인 세력들에게 편리한 핑계이자 유용한 도구일 뿐, 그들의 성공을 이끈 원인은 결코 아니다. 더욱이 브라질이나 인도처럼 이민이 주요 쟁점이 아닌 국가들에서도 극우 세력은 번성하고 있다.

가장 명확하고 확실히 타당해 보이는 설명은, 잔혹한 문화적 균질화 과정이기도 한 자본주의 세계화가 전 지구적 규모로, 다니엘 벤사이드(Daniel Bensaïd)가 제시한 일종의 정체성 패닉(identity panic)을 생산하고 재생산한다는 점이다. 이는 민족적 그리고/또는 종교적 불관용으로 이어지며 민족 간, 종교 간 갈등을 조장한다. 국가가 경제적 권력을 잃어갈수록, 그들은 모든 것 위에 국가(Nation Above All Else)라는 거대한 영광을 외쳐댄다. 이러한 설명 중 일부는 유용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전 지구적이며 역사의 특정한 시점에 일어나고 있는 이 현상에 대해 아직 포괄적인 분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맞서 싸울 것인가?

불행히도 마법 같은 공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버니 샌더스가 제안한 국제 반파시스트 전선(Global Anti-Fascist Front)은 훌륭한 제안이다. [2026년 3월 26~29일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에서 제1차 반파시스트 컨퍼런스가 열렸으며, <포르투알레그레 선언: 파시즘에 맞선 단결과 인민의 주권을 위하여>가 채택됐다. 선언의 제안은 다음과 같다. △ 국제 위원회 조직 및 국제 조정 공간 창설(제2차 회의 준비 포함), △ 선언문 서명 및 참여, △ 지역별 회의 추진, △ 팔레스타인, 쿠바, 베네수엘라 민중 연대, △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략 규탄 및 이란 민중의 자결권 존중, △ 식민지 및 제국주의 점령 종식 및 영토 주권 수호, △ 2026년 주요 활동(터키에서 열릴 반 NATO 회의,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열릴 G7 대항 정상회의, 브라질 베냉에서 열릴 세계사회포럼 등) (링크)] 이와 동시에 우리는 위기에 처한 각국에서 민주적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광범위한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또한 생태적 명령이기도 하다. 즉, 부정주의적, 생태학살적인 정부의 부상을 저지하거나, 그들이 집권했을 경우 그들의 파괴적인 정책에 저항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가, 특히 위기 상황에서 파시즘, 쿠데타, 권위주의 정권과 같은 현상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재생산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경향의 뿌리는 체제적이며, 따라서 그 대안 또한 근본적이고 반체제적이어야 한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 이론가인 막스 호르크하이머는 1938년에 이렇게 썼다. “자본주의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면, 파시즘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일관성 있는 반파시스트는, 곧 반자본주의자여야 한다는 뜻이다. 환경파괴와 지구온난화가 자본주의 체제의 팽창 논리에 따른 필연적 결과인 오늘날, 이 명제는 그 어느 때보다 유효하다. 우리가 생태적 재앙을 피하고자 한다면, 유일한 길은 생태사회주의와 같은 반체제적 대안을 모색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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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제1차 반파시스트 컨퍼런스(링크)


생태사회주의로 향하는 길

생태사회주의는 생태운동의 기본 논리와 정치경제학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비판을 결합하여 문명 차원의 급진적 대안을 제시하려는 시도이다. 이는 자본주의의 파괴적인 진보 개념에 맞서 돈이나 경제 논리가 아닌 사회적 필요와 생태적 균형에 의해 인도되는 경제적 접근 방식을 제안한다. 이러한 변증법적 종합은 조엘 코벨(Joel Kovel)과 존 벨라미 포스터(John Bellamy Foster)를 비롯한 폭넓은 저술가들에 의해 시도되고 있다. 동시에 이는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하지 않는 시장 생태주의(market ecology)와 자연의 한계를 무시하는 생산주의적 사회주의(productivist socialism) 모두를 비판한다.

생태사회주의는 네오파시즘적 부정주의와 환경파괴에 맞선 저항 속에서 사회운동과 생태운동, 농민, 원주민, 청년, 여성, 그리고 노동자들을 하나로 묶어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생태사회주의적 전환은 생산수단에 대한 공적 통제와 계획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는 투자와 기술변화에 관한 공적 결정을 의미한다. 사회 공공선을 위해 이런 결정권은 은행과 자본주의 기업으로부터 회수되어야 한다. 사회주의적 계획은 결정이 내려지는 모든 수준에서의 민주적이고 다원적인 토론에 근거한다. 즉, 정당, 플랫폼 또는 기타 정치 운동, 그리고 선출된 대표 형태로 민중에게 다양한 제안이 제출되게 된다. 그러나 대의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의 형태를 통해 완성되어야 하며, 필요한 경우 수정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민중은 지방, 국가, 그리고 나아가 글로벌 수준의 주요 현안에 대해 직접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파괴적 진보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하나의 역사적 과정이며, 사회, 문화, 사고방식의 영구 혁명적 전환이다. 이 전환은 새로운 생산양식과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대안적인 삶의 방식인 새로운 생태사회주의 문명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이는 화폐의 지배를 넘어, 광고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소비 습관을 넘어, 그리고 환경에 무용하거나 해로운 상품의 무제한적 생산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 과정은 사회적, 정치적 구조의 혁명적 전환, 그리고 생태사회주의 프로그램에 대한 대다수 민중의 적극적인 지지 없이는 시작될 수 없다. 국지적이고 부분적인 대결에서부터 사회의 급진적 변화에 이르기까지 민중 스스로의 집단적인 투쟁 경험과 함께 사회주의적 의식과 생태적 자각은 전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