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동정] 그냥, 오늘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조보영 회원
[편집자 주] 이번 회원동정은 에정연과 깊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조보영 회원이 보내는 편지입니다.
에정연에서 '회원동정' 코너에 제 소식을 다루고 싶다는 연락을 받고, 아무 생각없이 “알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하지만 모니터 앞에 앉자마자 멈칫하게 되더군요. 다른 회원님들은 여전히 기후위기의 최전선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지내고 계시는 것 같은데 저는 너무 딴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저의 근황을 적어봅니다.
2019년, 저는 원대한 포부를 품고 홍천으로 귀농해 옥수수와 고추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저의 경험과 의지를 믿고 땅을 살리는 농부가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환경운동을 하며 동경했던 ‘워너비 농부’의 삶을 나도 멋지게 살아보리라 호기롭게 외쳤죠.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습니다. 땅을 살리기도 전에 제 몸과 통장이 죽어가게 되더라고요. 지구를 살리는 농부들이 얼마나 위대한 분들인지 온몸으로 깨달으며, 결국 저는 엄혹한 현실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지구보다 내 몸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면서 화학비료와 적당히 타협한, 게으른 농부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22년, 세상에 가장 정직한 일은 땅이 주는 것으로 먹고 사는 것이라며 농사를 고집하던 저는 요양원에 사회복지사로 취업했습니다. 21세기 자본주의 세상에서 정직하게 살기엔 제 몸과 통장이 너무 연약하다는 것을 깨달은 시점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뜻밖의 환경 동지를 만났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은 천주교 춘천교구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이라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기관이거든요. 가톨릭 관점에서 생태적 회개와 행동을 촉구하는 이 회칙 덕분에, 요양원 안에서도 분리수거 하나, 에어컨 온도 조절 하나에 ‘생태 평화’의 의미를 담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런 활동을 보며 “에휴, 이런 소소한 실천보다 시스템의 전환이 더 필요한데….” 하며 혼자 심각해지다가 이내 피식 웃기도 했습니다. ‘꼴에 연구원 좀 했다고 시스템 같은 소리하고 있네!’ 하면서 말이죠.
서툴고 부끄러운 홍천 생활 속에서 저는 참 많은 것을 배워갑니다. 환경단체 간사 4년, 에정연 연구원 5년, 마을 활동가 2년. 그 동안 제가 외쳤던 기후변화와 에너지는 늘 거대하고 세련된 담론이 아니었을까요. 제가 농부가 되어보고,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보니 비로소 보입니다. 그때 나의 뜨거웠던 말과 행동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멀고 무거운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왜 나는 그때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을까?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저는 요즘 ‘작은 것들의 힘’을 믿으며 살고 있습니다. 세상을 뒤집는 대단한 걸음이 아니더라도 땅을 사랑하는 농부의 마음을 믿고,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기 위해 텀블러를 가지고 출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응원합니다. 조금은 평범한 이들의 느린 발걸음에 박자를 맞추는 것 또한 충분히 위대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제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오늘을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에정연은 에정연이 해야 할 일을 잘 해나가기를 바랍니다. 비록 지금은 몸도, 마음의 거리도 예전만큼 가깝진 않지만, 제 마음은 늘 에정연을 향해 있습니다. 멀리서나마 뜨겁게 응원하겠습니다. 모두 건강하게, 오늘을 살아내시길!

[회원동정] 그냥, 오늘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조보영 회원
[편집자 주] 이번 회원동정은 에정연과 깊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조보영 회원이 보내는 편지입니다.
에정연에서 '회원동정' 코너에 제 소식을 다루고 싶다는 연락을 받고, 아무 생각없이 “알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하지만 모니터 앞에 앉자마자 멈칫하게 되더군요. 다른 회원님들은 여전히 기후위기의 최전선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지내고 계시는 것 같은데 저는 너무 딴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저의 근황을 적어봅니다.
2019년, 저는 원대한 포부를 품고 홍천으로 귀농해 옥수수와 고추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저의 경험과 의지를 믿고 땅을 살리는 농부가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환경운동을 하며 동경했던 ‘워너비 농부’의 삶을 나도 멋지게 살아보리라 호기롭게 외쳤죠.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습니다. 땅을 살리기도 전에 제 몸과 통장이 죽어가게 되더라고요. 지구를 살리는 농부들이 얼마나 위대한 분들인지 온몸으로 깨달으며, 결국 저는 엄혹한 현실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지구보다 내 몸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면서 화학비료와 적당히 타협한, 게으른 농부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22년, 세상에 가장 정직한 일은 땅이 주는 것으로 먹고 사는 것이라며 농사를 고집하던 저는 요양원에 사회복지사로 취업했습니다. 21세기 자본주의 세상에서 정직하게 살기엔 제 몸과 통장이 너무 연약하다는 것을 깨달은 시점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뜻밖의 환경 동지를 만났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은 천주교 춘천교구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이라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기관이거든요. 가톨릭 관점에서 생태적 회개와 행동을 촉구하는 이 회칙 덕분에, 요양원 안에서도 분리수거 하나, 에어컨 온도 조절 하나에 ‘생태 평화’의 의미를 담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런 활동을 보며 “에휴, 이런 소소한 실천보다 시스템의 전환이 더 필요한데….” 하며 혼자 심각해지다가 이내 피식 웃기도 했습니다. ‘꼴에 연구원 좀 했다고 시스템 같은 소리하고 있네!’ 하면서 말이죠.
서툴고 부끄러운 홍천 생활 속에서 저는 참 많은 것을 배워갑니다. 환경단체 간사 4년, 에정연 연구원 5년, 마을 활동가 2년. 그 동안 제가 외쳤던 기후변화와 에너지는 늘 거대하고 세련된 담론이 아니었을까요. 제가 농부가 되어보고,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보니 비로소 보입니다. 그때 나의 뜨거웠던 말과 행동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멀고 무거운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왜 나는 그때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을까?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저는 요즘 ‘작은 것들의 힘’을 믿으며 살고 있습니다. 세상을 뒤집는 대단한 걸음이 아니더라도 땅을 사랑하는 농부의 마음을 믿고,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기 위해 텀블러를 가지고 출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응원합니다. 조금은 평범한 이들의 느린 발걸음에 박자를 맞추는 것 또한 충분히 위대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제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오늘을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에정연은 에정연이 해야 할 일을 잘 해나가기를 바랍니다. 비록 지금은 몸도, 마음의 거리도 예전만큼 가깝진 않지만, 제 마음은 늘 에정연을 향해 있습니다. 멀리서나마 뜨겁게 응원하겠습니다. 모두 건강하게, 오늘을 살아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