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의 인식과 정치·언론의 현실 사이, 이토록 깊은 단절이 있었던 적이 있었을까. 올해 초 한 설문조사(기후정치바람 발표)에서 유권자의 53.5%는 "지지 정당이 다르더라도 기후 공약이 좋으면 투표하겠다"고 답했다. 국민 절반 이상이 스스로를 '기후 유권자'로 정의한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금, 정당들의 10대 공약 중 구체적인 이행 수단이나 예산을 갖춘 기후·에너지 공약은 찾아보기 어렵다. 언론 지면에서 기후 기사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여전히 1% 미만의 마지노선에 갇혀 있다.
과반의 대중이 원하는데도 왜 기후 의제는 선거판과 미디어에서 이토록 철저히 소외되는가? 이 기묘한 미스매치의 배후에는 한국 정치와 미디어 구조의 고질적인 한계가 자리 잡고 있다.
침묵하고 있는 정치와 언론
가장 먼저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표 계산에 민감한 정치권이다. 선거는 단기전이다. 당선이 최우선인 후보자들에게 오랜 시간 표 효율성이 검증된 토목·개발 공약은 버리기 힘든 카드다. 실제로 과거 지자체장 공약의 대부분이 개발 중심이었던 반면, 기후 공약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더 큰 문제는 '총론 찬성, 각론 반대'의 딜레마에 있다. 거시적인 탄소 감축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우리 동네에 소각장을 짓거나,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규제를 완화하거나, 자가용 차로를 줄이는 구체적인 정책으로 들어가면 격렬한 이해관계 충돌이 발생한다. 표를 잃을 위험이 있는 갈등 조정 프로세스를 감당하기보다, 아예 공약을 모호하게 처리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정치권의 '가성비 좋은' 선택이 된 셈이다.
언론 역시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은 기후 뉴스에 높은 관심을 보이지만, 미디어가 생산하는 방식은 대중의 요구와 어긋나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BIGKinds) 분석 결과, 전체 뉴스 중 기후·에너지 기사 비중은 여전히 1.0% 미만이다. 그나마 발행되는 뉴스조차 78%가 단편적인 재난 중계다. 유권자는 준비되어 있는데 공론장은 왜 이토록 겉돌고 있을까? 이유는 명확하다. 정치와 언론이 시민들이 '진짜 원하는' 삶의 현장 언어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텀블러와 체제전환, 그 사이의 언어
이 단절을 깨기 위해서는 기후위기를 다루는 언어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기후 문제를 '텀블러 사용 확대'라는 개인의 도덕론이나 거대하고 이념적인 '체제 변혁'의 담론으로만 접근해서는 평범한 시민들의 삶과 결합할 수 없다.
최근 한겨레TV가 조명한 충남 태안의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현장은 바로 이 '생존의 언어'가 왜 필요한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석탄화력발전소나 탄소집약적 제조업이 밀집한 지역의 노동자와 주민들에게 "지구를 위해 공장을 닫아야 한다"는 일방적 당위는 폭력에 가깝다. 병원이 없어지고, 학교가 폐교되며, 일자리가 없어 고향을 떠나는 이들의 삶의 붕괴를 막아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정치가 대안을 만들고 언론이 집요하게 추적해야 할 '진짜 기후의제'다.
기후 정치가 선거판의 주류 의제로 올라서려면, 이제 세 주체가 각자의 자리에서 움직여야 한다. 정치권은 "내 일자리와 지역 경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안전하게 전환되는가"에 대한 현실적이고 정교한 정책 청사진을 선제적으로 생산해 제시해야 한다. 동시에 언론은 거대 무역 지표 뒤에 가려진 현장의 목소리를 발굴해 공론장의 의제로 번역해 내야 한다. 그리고 시민과 노동자는 더 이상 정치가 던져주는 공약을 기다리는 수혜자에 머물지 않고, 이 구체적인 생존의 청사진을 당당히 내놓으라고 정치권을 강제하는 강력한 주권자로 나서야 한다.
나가며
기후·에너지 의제는 더 이상 특정 분과에 격리된 환경 문제가 아니다. 폭염 속 노동의 안전부터 무너지는 지역의 의료와 교육 인프라, 그리고 내 일자리의 안녕까지, 시민의 삶 전반과 가장 촘촘하게 얽혀 있는 본질적인 민생 의제다.
이제 정치와 언론은 기후 의제를 공론장 주위를 맴도는 유령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먼 나라의 재난 중계나 엘리트 중심의 행정 지표가 아닌, 평범한 시민들의 실제 일상을 지키고 복원하는 '삶의 언어'로 이 문제를 공론장의 중심에서 적극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정치의 공급과 언론의 시선이 비로소 시민의 삶과 밀착하기 시작할 때, 53.5% 기후 유권자가 품은 변화의 열망도 세상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실체로 응답할 것이다.
[에정렌즈] 수요와 공급이 어긋난 기후정치
홍소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지원팀장
시민들의 인식과 정치·언론의 현실 사이, 이토록 깊은 단절이 있었던 적이 있었을까. 올해 초 한 설문조사(기후정치바람 발표)에서 유권자의 53.5%는 "지지 정당이 다르더라도 기후 공약이 좋으면 투표하겠다"고 답했다. 국민 절반 이상이 스스로를 '기후 유권자'로 정의한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금, 정당들의 10대 공약 중 구체적인 이행 수단이나 예산을 갖춘 기후·에너지 공약은 찾아보기 어렵다. 언론 지면에서 기후 기사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여전히 1% 미만의 마지노선에 갇혀 있다.
과반의 대중이 원하는데도 왜 기후 의제는 선거판과 미디어에서 이토록 철저히 소외되는가? 이 기묘한 미스매치의 배후에는 한국 정치와 미디어 구조의 고질적인 한계가 자리 잡고 있다.
침묵하고 있는 정치와 언론
가장 먼저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표 계산에 민감한 정치권이다. 선거는 단기전이다. 당선이 최우선인 후보자들에게 오랜 시간 표 효율성이 검증된 토목·개발 공약은 버리기 힘든 카드다. 실제로 과거 지자체장 공약의 대부분이 개발 중심이었던 반면, 기후 공약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더 큰 문제는 '총론 찬성, 각론 반대'의 딜레마에 있다. 거시적인 탄소 감축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우리 동네에 소각장을 짓거나,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규제를 완화하거나, 자가용 차로를 줄이는 구체적인 정책으로 들어가면 격렬한 이해관계 충돌이 발생한다. 표를 잃을 위험이 있는 갈등 조정 프로세스를 감당하기보다, 아예 공약을 모호하게 처리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정치권의 '가성비 좋은' 선택이 된 셈이다.
언론 역시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은 기후 뉴스에 높은 관심을 보이지만, 미디어가 생산하는 방식은 대중의 요구와 어긋나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BIGKinds) 분석 결과, 전체 뉴스 중 기후·에너지 기사 비중은 여전히 1.0% 미만이다. 그나마 발행되는 뉴스조차 78%가 단편적인 재난 중계다. 유권자는 준비되어 있는데 공론장은 왜 이토록 겉돌고 있을까? 이유는 명확하다. 정치와 언론이 시민들이 '진짜 원하는' 삶의 현장 언어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텀블러와 체제전환, 그 사이의 언어
이 단절을 깨기 위해서는 기후위기를 다루는 언어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기후 문제를 '텀블러 사용 확대'라는 개인의 도덕론이나 거대하고 이념적인 '체제 변혁'의 담론으로만 접근해서는 평범한 시민들의 삶과 결합할 수 없다.
최근 한겨레TV가 조명한 충남 태안의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현장은 바로 이 '생존의 언어'가 왜 필요한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석탄화력발전소나 탄소집약적 제조업이 밀집한 지역의 노동자와 주민들에게 "지구를 위해 공장을 닫아야 한다"는 일방적 당위는 폭력에 가깝다. 병원이 없어지고, 학교가 폐교되며, 일자리가 없어 고향을 떠나는 이들의 삶의 붕괴를 막아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정치가 대안을 만들고 언론이 집요하게 추적해야 할 '진짜 기후의제'다.
기후 정치가 선거판의 주류 의제로 올라서려면, 이제 세 주체가 각자의 자리에서 움직여야 한다. 정치권은 "내 일자리와 지역 경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안전하게 전환되는가"에 대한 현실적이고 정교한 정책 청사진을 선제적으로 생산해 제시해야 한다. 동시에 언론은 거대 무역 지표 뒤에 가려진 현장의 목소리를 발굴해 공론장의 의제로 번역해 내야 한다. 그리고 시민과 노동자는 더 이상 정치가 던져주는 공약을 기다리는 수혜자에 머물지 않고, 이 구체적인 생존의 청사진을 당당히 내놓으라고 정치권을 강제하는 강력한 주권자로 나서야 한다.
나가며
기후·에너지 의제는 더 이상 특정 분과에 격리된 환경 문제가 아니다. 폭염 속 노동의 안전부터 무너지는 지역의 의료와 교육 인프라, 그리고 내 일자리의 안녕까지, 시민의 삶 전반과 가장 촘촘하게 얽혀 있는 본질적인 민생 의제다.
이제 정치와 언론은 기후 의제를 공론장 주위를 맴도는 유령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먼 나라의 재난 중계나 엘리트 중심의 행정 지표가 아닌, 평범한 시민들의 실제 일상을 지키고 복원하는 '삶의 언어'로 이 문제를 공론장의 중심에서 적극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정치의 공급과 언론의 시선이 비로소 시민의 삶과 밀착하기 시작할 때, 53.5% 기후 유권자가 품은 변화의 열망도 세상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실체로 응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