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전환 지우기'…그 어려운 걸 윤석열 정부가 하고 있다
[초록發光]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의 불안한 미래 전망
에너지 전환.
극우를 제외하고, 진보, 중도, 보수, 그 누구나 에너지전환을 말한다. 세계경제포럼과 맥킨지도 앞장서고 있다. 물론, 관점에 따라 전환의 비전과 경로, 수단과 방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입장 차이가 있지만, 최근 주요 국가, 기업, 시민사회는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이라는 기표를 통해서 상호 의사소통이 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포스트 코로나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맞물리면서 에너지안보와 에너지요금이 화두가 됐지만, 진정한 에너지안보는 에너지전환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채굴주의와 군사주의로 작동되는 에너지안보로는 에너지위기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환주체는 누구인가, 전환광물(transition minerals)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등 해결해야 할 쟁점도 많지만, 에너지전환을 부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이 어려운 것을 해낸다. 박근혜 정부 들어 범부처 차원에서, 거의 모든 지방정부에서 '녹색성장'을 지웠다. 마찬가지로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전환 흔적 지우기'는 윤석열정부 110대 국정과제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원전 '유지'와 '복원'...그 사이의 정치적 거리두기
'탈원전 정책 폐기 및 원자력산업 생태계 강화'(3번)는 '상식'을 회복하고 '공정'을 바로 세우는 국정과제로 제시됐다. 그리고 에너지 안보 확립 및 에너지 신산업・신시장 창출(21번), 제조업 등 주력산업 고도화로 일자리 창출 기반 마련(23번), 고용안전망 강화와 지속가능성 제고(53번), 과학적인 탄소중립 이행방안 마련으로 녹색경제 전환(86번) 따위의 알맹이 없는 선언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은 실종됐다.
지난 6월 22일, 경남 창원시에서 열린 원전산업 협력업체 간담회에 참석한 대통령은 전 정부의 무늬만 탈원전 정책을 '바보 같은 짓'이라 거듭 비판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는 각각 원전산업 생태계 복원을 위해 원전산업 협력업체 지원대책과 원전 중소기업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2017년 '에너지전환(탈원전) 로드맵' 다음으로 2018년에 나온 '에너지전환(원전부문) 후속초지 및 보완대책'이 떠오른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오전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소재 보관장에서 한국형원전 APR1400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지역부문 영향 및 보완대책', '산업부문 영향 및 보완대책', '인력부문 영향 및 보완대책'은 스스로 밝힌 것처럼 원전산업 생태계를 유지하려고 마련됐다. 비록, 원자력 르네상스의 신화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2021년 원전 비중은 2017년에 비해 소폭 늘었다. 그렇다면, '유지'와 '복원' 사이에서 정치적 거리두기를 연출하려는 발상 자체는 미친 짓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얼마 전까지 운영된 '원전수출전략협의회'가 새로 구성될 '원전수출전략추진단'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앞서 6월 16일에 발표한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에 원전 복원-지원대책에 대한 시그널이 간단 명료하게 실렸다. 요약하면, 원전 비중 및 활용도 제고 방침은 강고한 핵발전시스템의 실체를 고스한히 보여준다.
반면 '재생에너지는 주민수용성에 기반하여 보급을 지속하되, 비중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재생에너지에 꼬리표가 붙은 '주민수용성'으로부터 어떻게 원전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에너지전환이 가속화되기 전에 재생에너지시스템의 정치경제적 취약성이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유지되더라도, 에너지믹스의 재조정은 커다란 차이를 낳을 것이다. 열량이 같더라도 영양분이 풍부하고 안전한 식재료를 선택하는 게 낫다. 간식이 아니라 주식이라면 특히 그렇다.
석탄-석유-가스-원전과 같이 기존 에너지원을 대체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믹스에 포함하는, 심지어 총에너지 소비량이 증가하는 경향(energy additions)을 전제하는 것은 안데르센의 <벌거벗은 임금님>에 나오는 재단사, 신하, 임금, 거리의 어른들의 모습을 닮았다. 이들은 거짓을 말하거나, 어리석음이 탄로 날까 두려워 그 거짓에 가담하거나, 권력 앞에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오직 꼬마만 진실을 밝힌다. 진실은 명징하다. 사회적으로, 환경적으로 유용한 생산과 소비의 바탕을 이루는 에너지전환이야말로 우리를 지키고 미래를 대비하는 상식과 공정이라는 것.
▲21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열린 새 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 공청회에서 패널로 참석한 허은녕 서울대학교 교수(왼쪽 다섯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에너지전환 지우기는 '탄소의 평범성'을 사회에 퍼뜨린다
작년 7월,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한 공정한 노동전환 지원방안'이 발표되고, 올해 3월에 정의로운 전환 조항이 포함된 '탄소중립기본법'이 본격 시행됐다. 법 규정을 따르면, 탄소중립기본계획은 2023년 3월까지 수립되면 문제없다. 그러나 그때면 너무 늦다. 적어도 2021년 부문별 감축목표와 적응대책의 이행현황을 구체적으로 점검하고, 그 결과보고서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다음으로 정부의 단순 전망에 따르면, 단기적으로 노동전환 수요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자동차와 석탄화력발전 산업, 그리고 중장기 노동전환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보이는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정유 산업에 대한 전략적 개입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이나 탄소중립을 강력하게 추진하지 않으면, 그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게 되는 부정의와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해소하고, 계획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다른 판단도 있을 것이다.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경제 체질로 바꾸고,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와 '자율과 창의로 만드는 담대한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RE100(재생에너지), EV100(전기차), EP100(에너지효율)이나 We Mean Business Coalition(2030년 50% 감축), Mission Possible Partnership(산업, 운송), First Movers Coalition(알루미늄, 항공, 화학, 콘크리트, 해운, 철강, 화물)과 같은 자율 캠페인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신념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전환적 사고의 흔적을 찾긴 어렵다. '탄소중립 산업전환 촉진 특별법(안)'이 공개돼야 확실히 알겠지만, 일종의 탄소 폭탄(carbon bomb)을 터뜨리는 범죄를 계속 용인하면, 다배출 기업과 사업장은 그것이 마치 특권인 줄 알게 된다. 그 여파로 탄소의 평범성(banality of carbon)이 사회에 널리 퍼질까 우려된다. 정치의 위기는 전환의 위기가 되고,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기후, 경제, 사회를 교차하는 복합위기를 극복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 된다.
탈탄소 목표 달성 실패...'익숙하지만 잔인한' 그곳에 도달하지 않으려면
올해로 스톡홀름 인간환경회의 50주년과 리우 환경개발회의 30주년을 맞았다. 포스트 코로나에 접어들어 일상으로 회복하면서 탄소중립 그린뉴딜를 가속화하여 복합위기를 돌파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은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시련이 닥쳤다. 전환의 계곡에 도착했다. 에너지・자원 공급난와 함께 찾아온 신냉전 구도로 회복 불능의 상태로 향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 30년, 50년 동안 벗어나지 못한 현상유지 해결 과정이라면, 탈탄소 목표 달성이 거의 불가능한 쇠퇴적 내러티브로 적당할 듯싶다. 정의로운 전환을 철저하게 기획하지 못한 충격요법이 만연하게 되면, 죽음의 정치(necropolitics)가 통치하는 사회적 붕괴 시나리오로 간주하면 그만이겠다. 결국, 낯선 이곳을 지난 후에는 이제 익숙하지만 잔인한 그곳에 다다르게 된다. 앞으로 부드러운 길은 사실상 끝났는지 모른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2021년,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는 새로운 생태사회계약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연구단(Global Research and Action Network for a New Eco-Social Contract)을 꾸렸다. 이들은 새로운 생태사회계약의 이해를 넓히고, 기후 회복력 있는 녹색경제로의 정의로운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다층적 수준에서 이해당사자들이 실천하는 행동, 제도, 과정을 탐색하여, 기후정의와 환경정의와 인종정의를 통합하고, 인권 보호, 괜찮은 일자리, 젠더 평등, 세대 간 정의, 자연세계의 권리와 생물학적・문화적 다양성 의제를 종합하고자 한다. 이런 사회생태계약은 오늘날의 사회계약과는 분명 뚜렷한 차이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7월이 됐다. 민선 8기 지방정부가 4년 동안 제 몫을 다할 수 있을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민선 7기에서 기후위기 대응・에너지전환 지방정부협의회를 이끈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적잖은 성과를 거뒀다. 이런 결실이 부디 사라지지 않고, 지역과 현장에서 확산되길 바란다. 지역별로 사회생태계약 공론화를 추진하면 좋겠지만, 탄소중립기본조례나 기후정의기본조례, 그리고 지속가능발전기본조례를 충실히 제정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물론 조례는 조례일 뿐이니까, 그 뒤로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더 신경써야겠지만.
[초록發光]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의 불안한 미래 전망
에너지 전환.
극우를 제외하고, 진보, 중도, 보수, 그 누구나 에너지전환을 말한다. 세계경제포럼과 맥킨지도 앞장서고 있다. 물론, 관점에 따라 전환의 비전과 경로, 수단과 방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입장 차이가 있지만, 최근 주요 국가, 기업, 시민사회는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이라는 기표를 통해서 상호 의사소통이 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포스트 코로나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맞물리면서 에너지안보와 에너지요금이 화두가 됐지만, 진정한 에너지안보는 에너지전환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채굴주의와 군사주의로 작동되는 에너지안보로는 에너지위기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환주체는 누구인가, 전환광물(transition minerals)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등 해결해야 할 쟁점도 많지만, 에너지전환을 부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이 어려운 것을 해낸다. 박근혜 정부 들어 범부처 차원에서, 거의 모든 지방정부에서 '녹색성장'을 지웠다. 마찬가지로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전환 흔적 지우기'는 윤석열정부 110대 국정과제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원전 '유지'와 '복원'...그 사이의 정치적 거리두기
'탈원전 정책 폐기 및 원자력산업 생태계 강화'(3번)는 '상식'을 회복하고 '공정'을 바로 세우는 국정과제로 제시됐다. 그리고 에너지 안보 확립 및 에너지 신산업・신시장 창출(21번), 제조업 등 주력산업 고도화로 일자리 창출 기반 마련(23번), 고용안전망 강화와 지속가능성 제고(53번), 과학적인 탄소중립 이행방안 마련으로 녹색경제 전환(86번) 따위의 알맹이 없는 선언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은 실종됐다.
지난 6월 22일, 경남 창원시에서 열린 원전산업 협력업체 간담회에 참석한 대통령은 전 정부의 무늬만 탈원전 정책을 '바보 같은 짓'이라 거듭 비판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는 각각 원전산업 생태계 복원을 위해 원전산업 협력업체 지원대책과 원전 중소기업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2017년 '에너지전환(탈원전) 로드맵' 다음으로 2018년에 나온 '에너지전환(원전부문) 후속초지 및 보완대책'이 떠오른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오전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소재 보관장에서 한국형원전 APR1400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지역부문 영향 및 보완대책', '산업부문 영향 및 보완대책', '인력부문 영향 및 보완대책'은 스스로 밝힌 것처럼 원전산업 생태계를 유지하려고 마련됐다. 비록, 원자력 르네상스의 신화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2021년 원전 비중은 2017년에 비해 소폭 늘었다. 그렇다면, '유지'와 '복원' 사이에서 정치적 거리두기를 연출하려는 발상 자체는 미친 짓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얼마 전까지 운영된 '원전수출전략협의회'가 새로 구성될 '원전수출전략추진단'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앞서 6월 16일에 발표한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에 원전 복원-지원대책에 대한 시그널이 간단 명료하게 실렸다. 요약하면, 원전 비중 및 활용도 제고 방침은 강고한 핵발전시스템의 실체를 고스한히 보여준다.
반면 '재생에너지는 주민수용성에 기반하여 보급을 지속하되, 비중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재생에너지에 꼬리표가 붙은 '주민수용성'으로부터 어떻게 원전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에너지전환이 가속화되기 전에 재생에너지시스템의 정치경제적 취약성이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유지되더라도, 에너지믹스의 재조정은 커다란 차이를 낳을 것이다. 열량이 같더라도 영양분이 풍부하고 안전한 식재료를 선택하는 게 낫다. 간식이 아니라 주식이라면 특히 그렇다.
에너지전환 지우기는 '탄소의 평범성'을 사회에 퍼뜨린다
작년 7월,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한 공정한 노동전환 지원방안'이 발표되고, 올해 3월에 정의로운 전환 조항이 포함된 '탄소중립기본법'이 본격 시행됐다. 법 규정을 따르면, 탄소중립기본계획은 2023년 3월까지 수립되면 문제없다. 그러나 그때면 너무 늦다. 적어도 2021년 부문별 감축목표와 적응대책의 이행현황을 구체적으로 점검하고, 그 결과보고서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다음으로 정부의 단순 전망에 따르면, 단기적으로 노동전환 수요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자동차와 석탄화력발전 산업, 그리고 중장기 노동전환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보이는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정유 산업에 대한 전략적 개입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이나 탄소중립을 강력하게 추진하지 않으면, 그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게 되는 부정의와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해소하고, 계획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다른 판단도 있을 것이다.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경제 체질로 바꾸고,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와 '자율과 창의로 만드는 담대한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RE100(재생에너지), EV100(전기차), EP100(에너지효율)이나 We Mean Business Coalition(2030년 50% 감축), Mission Possible Partnership(산업, 운송), First Movers Coalition(알루미늄, 항공, 화학, 콘크리트, 해운, 철강, 화물)과 같은 자율 캠페인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신념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전환적 사고의 흔적을 찾긴 어렵다. '탄소중립 산업전환 촉진 특별법(안)'이 공개돼야 확실히 알겠지만, 일종의 탄소 폭탄(carbon bomb)을 터뜨리는 범죄를 계속 용인하면, 다배출 기업과 사업장은 그것이 마치 특권인 줄 알게 된다. 그 여파로 탄소의 평범성(banality of carbon)이 사회에 널리 퍼질까 우려된다. 정치의 위기는 전환의 위기가 되고,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기후, 경제, 사회를 교차하는 복합위기를 극복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 된다.
탈탄소 목표 달성 실패...'익숙하지만 잔인한' 그곳에 도달하지 않으려면
올해로 스톡홀름 인간환경회의 50주년과 리우 환경개발회의 30주년을 맞았다. 포스트 코로나에 접어들어 일상으로 회복하면서 탄소중립 그린뉴딜를 가속화하여 복합위기를 돌파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은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시련이 닥쳤다. 전환의 계곡에 도착했다. 에너지・자원 공급난와 함께 찾아온 신냉전 구도로 회복 불능의 상태로 향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 30년, 50년 동안 벗어나지 못한 현상유지 해결 과정이라면, 탈탄소 목표 달성이 거의 불가능한 쇠퇴적 내러티브로 적당할 듯싶다. 정의로운 전환을 철저하게 기획하지 못한 충격요법이 만연하게 되면, 죽음의 정치(necropolitics)가 통치하는 사회적 붕괴 시나리오로 간주하면 그만이겠다. 결국, 낯선 이곳을 지난 후에는 이제 익숙하지만 잔인한 그곳에 다다르게 된다. 앞으로 부드러운 길은 사실상 끝났는지 모른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2021년,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는 새로운 생태사회계약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연구단(Global Research and Action Network for a New Eco-Social Contract)을 꾸렸다. 이들은 새로운 생태사회계약의 이해를 넓히고, 기후 회복력 있는 녹색경제로의 정의로운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다층적 수준에서 이해당사자들이 실천하는 행동, 제도, 과정을 탐색하여, 기후정의와 환경정의와 인종정의를 통합하고, 인권 보호, 괜찮은 일자리, 젠더 평등, 세대 간 정의, 자연세계의 권리와 생물학적・문화적 다양성 의제를 종합하고자 한다. 이런 사회생태계약은 오늘날의 사회계약과는 분명 뚜렷한 차이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7월이 됐다. 민선 8기 지방정부가 4년 동안 제 몫을 다할 수 있을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민선 7기에서 기후위기 대응・에너지전환 지방정부협의회를 이끈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적잖은 성과를 거뒀다. 이런 결실이 부디 사라지지 않고, 지역과 현장에서 확산되길 바란다. 지역별로 사회생태계약 공론화를 추진하면 좋겠지만, 탄소중립기본조례나 기후정의기본조례, 그리고 지속가능발전기본조례를 충실히 제정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물론 조례는 조례일 뿐이니까, 그 뒤로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더 신경써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