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0년 서울의 모습은 어떨까?
에정칼럼]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 시민 공청회
도시란 무엇일까? 도시는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면서도 마치 살아 숨 쉬는 생물과 같다. 도시는 각각 저마다의 특징과 문화가 있으며, 도시는 도시에 사는 시민들의 삶뿐만 아니라 도시 밖의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특히, 기후변화 시대에 도시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도시의 역할은 바뀌었다. 산업화 시대에 경제발전을 위해 싼 인력을 모으고, 오염물질을 배출하고, 도시의 발전으로 국가의 발전을 견인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어떻게 배출량을 줄이고, 기후위기에서 시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시대이다.
이런 답답한 마음을 안고 지난 24일에 열린 서울시 최상위 공간계획인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이하 서울도시기본계획)’ 시민 공청회에 참석했다. 법정계획이자 장기계획인 도시기본계획은 하위계획과 지역계획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계획인 만큼, 많은 시민이 참석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한 사람으로서 서울시가 미래 서울을 어떻게 설계하고 있는지 기대와 우려 속에 발표를 경청했다. 서울도시기본계획안은 ‘시민 삶의 질 개선’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라는 빛 좋은 두 가지 비전을 내세우고, △‘보행 일상권’ 조성, △수변중심 공간 재편, △미래성장거점을 위한 중심지 혁신, △도시계획 대전환, △지상철도 지하화, △미래교통 인프라 확충이라는 6대 공간계획을 제시했다. 보행 일상권 조성을 제외하고는 두루뭉술하기도 하고 다른 도시의 계획인 듯한 공간계획이었다.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안을 보고 나니, 다음과 같은 이유로 내가 여기에 앉아 있어도 되는 것인지, 서울에 계속 살아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첫째, 누구를 위한 계획인지 의문이 들었다. ‘시민 삶의 질 개선’을 위한 계획이라고 했지만, 그 시민은 안정적인 직장이 있고, 여의도, 용산, 강남에 살고, 편리함을 위해 기꺼이 돈을 낼 수 있는 중상위 계층 이상인 사람이어야만 하는 것 같았다. 토론자 중 한양대 고준호 교수 또한 ‘삶의 질’이 무엇인지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고, 놀랍게도 연구 담당자는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라고 대답했다. 높이 규제 완화와 서울 중심지 혁신이라는 명목하에 서울의 인프라와 혜택은 한 곳으로 모이고, 불평등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도시 경쟁력 제고’라는 명목하에 더 높은 건물을 짓고, 인프라를 중심에 모으고, 상상 속의 이동수단을 도입하는 계획은 누구를 위한 계획인지 더욱 의문이 들게 한다.
서울은 평생 삶의 터전이었지만, 점차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살기 버거운 도시가 되었으며,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는 언젠가 떠나야 할 곳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서울이 노후화했기 때문도, 불편하기 때문도 아니라, 불평등하기 때문이다. 2021년에 서울연구원에서 서울 청년(만20세~39세)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삶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서 10점 만점에 4.63점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도 불평등을 많이 느끼기 때문이라는 분석결과가 있었다. 서울을 중심으로 꾸역꾸역 전국의 인구를 흡수하는 것도, 당장 살고 있는 집은 똑같은데 집값은 사람의 인생을 휘두를 정도로 변하는 것도, 최소한의 편안한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꼭 빚을 내야 하는 것도 지치게 만든다. 서울에서 밀려나 인천, 경기 등 수도권으로 떠나간 사람도 서울에서 생활하기 위해 (혹은 서울에서처럼 생활하기 위해) 더 많은 차를 사고, 더 많은 도로와 개발을 요구한다.
도시 경쟁력을 찾기엔, 수도권에는 벌써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다. 지방의 인구는 급감하고 고령화되고 있으며, 빈집이 늘어나고, 인력이 부족하고, 인프라도 줄어들고 있다. 한편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치솟는 집값의 원인은 공급 부족이라 외치며 더 많은 집을 짓고, 더 많은 개발만이 해결책이라는 목소리가 상식처럼 퍼져있다. 이대로 가다간 모든 국민이 집을 사기 위해 기하급수적인 가계 부채를 개인의 빚으로 안고, 지방은 부도나고, 5,000만 인구가 모두 서울 생활권에 살게 될 수도 있겠다. 그제서야 정부는 ‘국토의 효율적 활용을 위한 인구 분산 방안’ 정도의 정책을 내놓게 될까?
둘째, 서울이 지구를 망칠 것만 같았다. 우리는 탄소중립을 해야만 하는 기후위기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서울도시계획안은 과연 서울이 목표한 2050년 탄소중립을 준비하는 2040년을 위한 계획인지 의문이 드는 내용투성이였다. 기후환경 분야를 6가지 부문별 전략계획 중 하나로 담고 있었지만, 서울이라는 우리나라 대표 도시가 내세운 계획이라고 하기에 부끄러울 정도로 기존의 미진한 환경정책을 일부 담는데 그치고 있었다.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기존의 무분별한 소비 시스템의 전환이 필수적인 만큼 도시계획은 도시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탄소중립 목표를 이뤄야 한다. 도시계획은 에너지 시스템의 전환, 소비와 생활 구조의 변화, 더 나아가서는 도시의 축소까지도 고민해야 한다. 개발 계획은 사상 최대의 탄소배출이 예상되는, 공상과학영화 수준의 도시 재건축을 담고 있는데, 기후·환경 부문의 전략 계획은 대체로 ‘시민들과 함께하는 쓰레기 줄이기~’ 수준에 그치고 있어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다행히 공청회에 참석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김현우 연구기획위원을 비롯한 많은 시민이 서울도시기본계획안의 기후위기 대응 부족을 꼬집었고, 최종안이 나오기 전까지 충분히 반영되기를 기도할 뿐이다.
뿐만 아니라, 서울은 건물과 인구 밀집도가 높은 만큼 배출량도 높고 폭염으로 인한 피해도 예상된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계획 차원에서의 기후변화 대응과 적응을 함께해야 한다. 하지만 서울도시기본계획안은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 위기를 대비한 인프라 마련 등의 내용은 없었고, 그렇게 되면 도시는 살아가기 힘든 공간이 될 수 밖에 없다. ‘파리 15분 도시’를 표방하는 듯한 ‘보행 일상권’ 계획도 불평등 완화와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목표는 없었다. 서울도시기본계획안은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것 같다. 기후변화를 막지 못하면 서울의 미래는 없고, 그 위기에서 서울 시민을 보호하지 못하면 서울에 살고 싶어할 시민은 없다는 것이다.
도시는 삶의 터전이며, 도시기본계획은 도시의 미래 방향을 설정하는 중요한 계획이다. 단순히 겉으로 봤을 때 예쁜 도시, 외국인이 관광하기 좋은 도시, 돈많은 사람들이 살기 좋은 도시가 아니라,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기후위기 시대에 도시의 책무를 다하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 출처: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 공청회 유튜브
에정칼럼]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 시민 공청회
도시란 무엇일까? 도시는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면서도 마치 살아 숨 쉬는 생물과 같다. 도시는 각각 저마다의 특징과 문화가 있으며, 도시는 도시에 사는 시민들의 삶뿐만 아니라 도시 밖의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특히, 기후변화 시대에 도시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도시의 역할은 바뀌었다. 산업화 시대에 경제발전을 위해 싼 인력을 모으고, 오염물질을 배출하고, 도시의 발전으로 국가의 발전을 견인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어떻게 배출량을 줄이고, 기후위기에서 시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시대이다.
이런 답답한 마음을 안고 지난 24일에 열린 서울시 최상위 공간계획인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이하 서울도시기본계획)’ 시민 공청회에 참석했다. 법정계획이자 장기계획인 도시기본계획은 하위계획과 지역계획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계획인 만큼, 많은 시민이 참석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한 사람으로서 서울시가 미래 서울을 어떻게 설계하고 있는지 기대와 우려 속에 발표를 경청했다. 서울도시기본계획안은 ‘시민 삶의 질 개선’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라는 빛 좋은 두 가지 비전을 내세우고, △‘보행 일상권’ 조성, △수변중심 공간 재편, △미래성장거점을 위한 중심지 혁신, △도시계획 대전환, △지상철도 지하화, △미래교통 인프라 확충이라는 6대 공간계획을 제시했다. 보행 일상권 조성을 제외하고는 두루뭉술하기도 하고 다른 도시의 계획인 듯한 공간계획이었다.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안을 보고 나니, 다음과 같은 이유로 내가 여기에 앉아 있어도 되는 것인지, 서울에 계속 살아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첫째, 누구를 위한 계획인지 의문이 들었다. ‘시민 삶의 질 개선’을 위한 계획이라고 했지만, 그 시민은 안정적인 직장이 있고, 여의도, 용산, 강남에 살고, 편리함을 위해 기꺼이 돈을 낼 수 있는 중상위 계층 이상인 사람이어야만 하는 것 같았다. 토론자 중 한양대 고준호 교수 또한 ‘삶의 질’이 무엇인지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고, 놀랍게도 연구 담당자는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라고 대답했다. 높이 규제 완화와 서울 중심지 혁신이라는 명목하에 서울의 인프라와 혜택은 한 곳으로 모이고, 불평등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도시 경쟁력 제고’라는 명목하에 더 높은 건물을 짓고, 인프라를 중심에 모으고, 상상 속의 이동수단을 도입하는 계획은 누구를 위한 계획인지 더욱 의문이 들게 한다.
서울은 평생 삶의 터전이었지만, 점차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살기 버거운 도시가 되었으며,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는 언젠가 떠나야 할 곳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서울이 노후화했기 때문도, 불편하기 때문도 아니라, 불평등하기 때문이다. 2021년에 서울연구원에서 서울 청년(만20세~39세)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삶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서 10점 만점에 4.63점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도 불평등을 많이 느끼기 때문이라는 분석결과가 있었다. 서울을 중심으로 꾸역꾸역 전국의 인구를 흡수하는 것도, 당장 살고 있는 집은 똑같은데 집값은 사람의 인생을 휘두를 정도로 변하는 것도, 최소한의 편안한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꼭 빚을 내야 하는 것도 지치게 만든다. 서울에서 밀려나 인천, 경기 등 수도권으로 떠나간 사람도 서울에서 생활하기 위해 (혹은 서울에서처럼 생활하기 위해) 더 많은 차를 사고, 더 많은 도로와 개발을 요구한다.
도시 경쟁력을 찾기엔, 수도권에는 벌써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다. 지방의 인구는 급감하고 고령화되고 있으며, 빈집이 늘어나고, 인력이 부족하고, 인프라도 줄어들고 있다. 한편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치솟는 집값의 원인은 공급 부족이라 외치며 더 많은 집을 짓고, 더 많은 개발만이 해결책이라는 목소리가 상식처럼 퍼져있다. 이대로 가다간 모든 국민이 집을 사기 위해 기하급수적인 가계 부채를 개인의 빚으로 안고, 지방은 부도나고, 5,000만 인구가 모두 서울 생활권에 살게 될 수도 있겠다. 그제서야 정부는 ‘국토의 효율적 활용을 위한 인구 분산 방안’ 정도의 정책을 내놓게 될까?
둘째, 서울이 지구를 망칠 것만 같았다. 우리는 탄소중립을 해야만 하는 기후위기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서울도시계획안은 과연 서울이 목표한 2050년 탄소중립을 준비하는 2040년을 위한 계획인지 의문이 드는 내용투성이였다. 기후환경 분야를 6가지 부문별 전략계획 중 하나로 담고 있었지만, 서울이라는 우리나라 대표 도시가 내세운 계획이라고 하기에 부끄러울 정도로 기존의 미진한 환경정책을 일부 담는데 그치고 있었다.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기존의 무분별한 소비 시스템의 전환이 필수적인 만큼 도시계획은 도시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탄소중립 목표를 이뤄야 한다. 도시계획은 에너지 시스템의 전환, 소비와 생활 구조의 변화, 더 나아가서는 도시의 축소까지도 고민해야 한다. 개발 계획은 사상 최대의 탄소배출이 예상되는, 공상과학영화 수준의 도시 재건축을 담고 있는데, 기후·환경 부문의 전략 계획은 대체로 ‘시민들과 함께하는 쓰레기 줄이기~’ 수준에 그치고 있어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다행히 공청회에 참석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김현우 연구기획위원을 비롯한 많은 시민이 서울도시기본계획안의 기후위기 대응 부족을 꼬집었고, 최종안이 나오기 전까지 충분히 반영되기를 기도할 뿐이다.
뿐만 아니라, 서울은 건물과 인구 밀집도가 높은 만큼 배출량도 높고 폭염으로 인한 피해도 예상된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계획 차원에서의 기후변화 대응과 적응을 함께해야 한다. 하지만 서울도시기본계획안은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 위기를 대비한 인프라 마련 등의 내용은 없었고, 그렇게 되면 도시는 살아가기 힘든 공간이 될 수 밖에 없다. ‘파리 15분 도시’를 표방하는 듯한 ‘보행 일상권’ 계획도 불평등 완화와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목표는 없었다. 서울도시기본계획안은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것 같다. 기후변화를 막지 못하면 서울의 미래는 없고, 그 위기에서 서울 시민을 보호하지 못하면 서울에 살고 싶어할 시민은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