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발광동남아 떠돌던 유령이 돌아왔다? 소형모듈원전 선택한 태국의 미래는? / 유예지 태국 탐마삿대학교 사회정책・개발학과 강사

2024-08-21

[초록發光] 기후위기 시대에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원자력

동남아 떠돌던 유령이 돌아왔다? 소형모듈원전 선택한 태국의 미래는?

유예지 태국 탐마삿대학교 사회정책·개발학과 강사


동남아를 떠돌고 있던 유령, 원자력이 돌아왔다. 지난 6월 22일 세타 타위신 태국 총리는 첫 TV연설에서 원자력발전소 건설 추진 의사를 밝혔다. 국민들의 전기세 부담을 낮추고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청정에너지로서 태국에도 원전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태국의 원전 도입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53년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계획이 발표된 이후부터 2010년대까지 꾸준히 원전을 추진하고자 하였으나 그 시도는 번번이 좌절되었다. 태국은 1950년대 말 국가원자력기구를 설립하고 1960년대 원자력법을 통과시켜 원전을 위한 조사에 착수하였으나 1970년대 타이만에서 천연가스가 발견되고 채굴에 성공하면서 원전 계획은 백지화된 바 있다.

▲ ©Bangkok Post. 1962년 가동을 시작한 태국의 연구용 원자로 (사진: Krit Promsaka na Sakolnakorn)

태국은 2007~2021년 전력수급계획(Power Development Plan, PDP2007)을 통해 다시 원전 건설 카드를 꺼내 든다. PDP2007에선 4000메가와트(MW)로 제시되었던 원전의 설비용량이 PDP2007 개정안에선 2000MW로 축소, PDP2010에선 5000MW로 확대되었으나 건설로 이어지진 못하였다. 당시 원전 후보지였던 6개 지역(나콘사완, 춤폰, 나콘시탐마랏, 쁘라쭈압키리칸, 우본랏차타니, 뜨랏)의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적극적인 이의 제기도 큰 역할을 하였지만 2011년 3월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건설 계획이 연기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계속 태국의 전력수급계획에는 원자력이 포함되어왔으나 2020년 10월에 승인된 PDP2018 개정안에서 최종적으로 원자력이 제외되며 태국에선 원자력이 종적을 감추는 듯했다. 당시 태국 학계와 시민사회는 원자력이 다시 등장할 수 있기에 안심하기에는 이르며 계속해서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결국 우려했던 대로, 태국을 떠돌던 원자력이라는 유령이 기후위기 시대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시대가 달라진 만큼, 원자력도 새로운 형태로 등장했다. 소형모듈원전(Small Modular Reactor, SMR)이라는 모습으로 말이다. 소형모듈원전은 발전용량이 300MW 규모 이하인 소형 원전으로, 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을 주도할 차세대 원전 기술로 홍보되고 있다. 미국, 영국, 중국은 소형모듈원전 기술 발전에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으며 한국 정부 역시 '차세대 원자력'(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4.02.20.), '미래 에너지시장의 게임체인저'(산업통상자원부 보도자료 2024.02.01.)로 홍보하며 소형모듈원전 개발과 조기 상용화를 위한 투자와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원자력이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더 안전하거나 효율적이라는 보장은 없다. 소형모듈원전의 찬성론자들은 대형원전의 안정성, 주민 수용성, 투자 위험성 등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고 탄소배출 저감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동일한 위험 요소들을 공유하고 있다. 방사능 누출 사고, 핵폐기물 처리 문제, 높은 건설 비용 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다.


먼저, 태국의 소형모듈원전 추진계획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방콕포스트는 태국에서 원전을 건설하는 데 가장 큰 장벽은 기술적 한계가 아니라 상업적 타당성이라고 지적했다. 태국의 경우 원전의 균등화 발전비용(건설, 연료, 운영 및 유지보수비용을 포함한 원자로의 수명기간 동안의 평균 비용)은 여타 재생에너지원보다 더 비싸다. 현재 태국의 원자력 발전단가는 메가와트시당 180미화달러(6664바트)로,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에 비해 2.5~3배 이상 비싼 상황이다.


또 다른 문제는 태국의 전력 설비예비율이 2022년 기준으로 34%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이는 에너지 수요를 과도하게 예측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과잉 전력에 대한 비용은 전기세에 FT(Fuel Tarriff, 연료비 변동이나 정부 정책으로 발생한 통제되지 않는 비용의 변화를 반영한 변동 전기세)라는 항목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따라서 전력수요에 대한 정확한 예측 없이 전력 설비를 늘리는 것은 태국 총리나 원전 찬성론자들이 주장하는 전기세 인하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없다.


환경적 측면에서도 소형모듈원전은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다. 탄소중립을 위한 청정에너지로 홍보되고 있지만, 원자력 발전의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및 오염물질 배출을 고려하면 진정한 '청정에너지'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우라늄 채굴 및 정제, 운송, 원전 건설 및 운영, 그리고 핵폐기물 처리 등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며, 핵폐기물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게다가 작년에 발생한 방사성 세슘-137 실린더 분실 사고와 올해 4월에 일어난 공장 화재 사건으로 드러난 유해 산업폐기물 불법 방치 문제는 사업자의 무책임함과 태국 정부의 허술한 감독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런 사건을 고려할 때, 소형모듈원전이라 할지라도 문제 발생 시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원전을 태국에 도입한다면 그 잠재적 위험성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결론적으로, 태국의 원자력 도입 시도는 수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는 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원자력은 새로운 형태로 등장하더라도 그 본질적인 위험성을 무시할 수 없다.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원자력에 의존하기보다는, 더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태국은 원자력이라는 유령을 다시 소환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에너지 시대를 이끌어 나가기 위한 진정한 청정에너지 혁명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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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202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