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發光] 윤석열 대통령의 지방시대 선언과 배치되는 산업부의 권한 강화
"분산에너지", 다시 중앙집중형으로의 회귀
진상현 경북대학교 행정학부 교수
'쓰레기통 모형'은 국회에서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설명하는 사회과학 이론 가운데 하나다. 국회의원 개인의 자질이 무능하고 정치 행태에서 악취가 나기 때문에 쓰레기통이라고 매도하는 의미는 아니다. 미국 의회의 의사결정 방식을 들여다봤더니,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 정책이 사안의 중요도, 수단과 결과의 인과관계, 해결 시점의 적절성 등을 합리적으로 검토해서 법안으로 제정되는 것이 아니라, 서류함에 안건이 쌓여있다가 어느 순간 비워진다는 측면에서 쓰레기통이라는 비유가 사용되고 있다. 물론 한국의 국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 서류더미 (출처: 픽사베이)
작년 5월 국회를 통과했던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바로 그런 경우다. 당시까지만 해도, 산업계를 포함한 이해관계자 대부분이 분산에너지법의 제정을 예상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준비도 못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송전선 갈등을 해결하려는 야당과 소형 원전을 포함시키려는 여당의 이해타산이 맞아떨어지면서 예상보다 빨리 법률이 마련되고 말았다. 구체적으로는 국회 소위에서 네 차례의 논의를 거친 뒤, 불과 두 달 만에 본회 안건으로 상정되어 통과되었다. 지금은 법률의 시행을 앞두고 시행령과 시행규칙의 의견 수렴이 진행 중이다.
이처럼 아무리 쓰레기통 방식으로 결정되었다고 해도, 일단 제정된 법률은 과정보다도 제도 자체로서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 그렇지만 이번 분산에너지법은 내용에서도 큰 문제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분산에너지는 대규모 원전이나 석탄 화력발전에 의존하는 기형적 중앙집중형에 대비되는 개념이지만, 한국의 법안이 이러한 제도적 취지를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중앙집중형과 다르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통상적으로 세 가지 정도가 있다.
첫 번째는 '발전 용량'이다. 유럽은 대규모와 소규모를 구분하는 발전 설비의 기준으로 5만 킬로와트를 채택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에 국회 심의에서 추가된 소형 원전은 30만 킬로와트로 통상적인 분산형의 여섯 배에 달할 정도로 큰 발전소이다. 물론 100만에서 140만 킬로와트 규모의 다른 원자력 발전소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이기 때문에, 기업이나 공장이 자가 소비용으로 도입하거나 중소 도시에서 바로 소비될 정도로 가까운 발전소라면, 분산형이라고 우기는 근거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럴 경우에는 다른 대규모 가스복합발전이나 석탄 화력도 자가 소비를 근거로 동일한 혜택을 요구하면서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이와 관련되는 두 번째 기준이 '공급 거리'이다. 분산에너지라는 개념 자체가 멀리 떨어진 대형 발전소에 의존하지 않고, 소비 지역에서 직접 전력을 공급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거리라는 공간적 요소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번에 공개된 시행령에서도 전력 공급에 필요한 154kV 송전선을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 시행령은 송전이 반드시 없어야 한다는 조항이 아니라, "추가 건설이 최소화될 것"으로 규정해 송전탑의 설치를 허용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분산에너지의 취지에서 벗어나고 있다.
앞의 두 가지 논쟁적인 기준만큼이나 중요한 세 번째 기준이 전력의 '생산 주체'이다. 즉, 누가 발전소를 운영해 전력을 생산하느냐가 분산에너지를 판단하는 기준일 수 있다. 지금처럼 거대한 국가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독점하는 상황은 중앙집중형일 수밖에 없으며, 반대로 제주에너지공사나 태양광협동조합처럼 지역의 이해관계자에 의해 전기가 생산될 때는 분산에너지로 구분이 가능하다. 물론 입법 예고된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한전이 사업 주체여야 한다는 독소 조항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법률 전반에서는 중앙정부가 모든 것으로 결정하도록 규정하는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분산에너지법'에서만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100여 번 언급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들 수 있다. 제도 시행의 책임 및 의무를 대부분 중앙정부에 부과하고 있으며, 법률의 주체를 산업부로 명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분산에너지 활성화 기본계획'을 장관이 작성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분산에너지특화지역의 선정도 산업부 장관이 하도록 권한이 부여돼 있다. 반면에 지방자치단체인 시․도지사는 20번 명시된 데 그친다. 내용상으로도 이들 자치단체장에게 부여된 권한은 장관과의 협의 혹은 사업자의 신청서를 받아서 전달하는 통로 역할 정도로 제한돼 있다.
게다가 산업부의 지시로 정부 업무를 대행하는 한국에너지공단은 '에너지이용합리화법'에 의거해 설립된 공공기관임에도 불구하고, 분산에너지법의 중요한 실행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 과거에도 수요관리를 전담하기 위한 조직인 공단에 신재생에너지센터가 추가되면서 공급을 담당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번 법률을 계기로 분산에너지진흥센터까지 맡아서 운영하는 방향으로 시행령이 선포된 상태이다. 한마디로 산업부가 주도하는 분산에너지 사업의 손발을 공단이 맡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분산에너지는 단순히 대형 발전소를 흩뜨려 놓는 기술적인 형태에 국한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는 파워(power), 즉 전력 및 권력의 지역 분산화로 귀결돼야 한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한국의 에너지정책은 '新지방분권화'와 '新중앙집권화'가 충돌하는 상황이다. 이번 분산에너지법은 명칭 때문에 중앙보다는 지자체에 가까울 것 같지만, 실상은 산업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이 되고 있다.
그나마 한 가닥 희망이라면, 해당 법률이 한시적 특별법 형태로 마련되었다는 사실이다. 국회에서 잘못된 통과된 법률을 새로 대폭 개정하거나, 이번에 공지된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전면 재편할 수 없다면, 차라리 빠른 시일 내에 특별법을 폐기하고 바람직한 방향의 일반법으로 제도적 틀을 다시 구성하는 게 대안일 수 있을 것이다. 특별법은 제한적․한시적이거나 특별한 대상에 국한해서, 가급적 짧은 기간 동안만 존속되는 게 바람직하다. 물론 분산에너지특별법도 마찬가지이다.
* 본 칼럼은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원문보기(2024.1.22)
[초록發光] 윤석열 대통령의 지방시대 선언과 배치되는 산업부의 권한 강화
"분산에너지", 다시 중앙집중형으로의 회귀
진상현 경북대학교 행정학부 교수
'쓰레기통 모형'은 국회에서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설명하는 사회과학 이론 가운데 하나다. 국회의원 개인의 자질이 무능하고 정치 행태에서 악취가 나기 때문에 쓰레기통이라고 매도하는 의미는 아니다. 미국 의회의 의사결정 방식을 들여다봤더니,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 정책이 사안의 중요도, 수단과 결과의 인과관계, 해결 시점의 적절성 등을 합리적으로 검토해서 법안으로 제정되는 것이 아니라, 서류함에 안건이 쌓여있다가 어느 순간 비워진다는 측면에서 쓰레기통이라는 비유가 사용되고 있다. 물론 한국의 국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 서류더미 (출처: 픽사베이)
작년 5월 국회를 통과했던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바로 그런 경우다. 당시까지만 해도, 산업계를 포함한 이해관계자 대부분이 분산에너지법의 제정을 예상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준비도 못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송전선 갈등을 해결하려는 야당과 소형 원전을 포함시키려는 여당의 이해타산이 맞아떨어지면서 예상보다 빨리 법률이 마련되고 말았다. 구체적으로는 국회 소위에서 네 차례의 논의를 거친 뒤, 불과 두 달 만에 본회 안건으로 상정되어 통과되었다. 지금은 법률의 시행을 앞두고 시행령과 시행규칙의 의견 수렴이 진행 중이다.
이처럼 아무리 쓰레기통 방식으로 결정되었다고 해도, 일단 제정된 법률은 과정보다도 제도 자체로서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 그렇지만 이번 분산에너지법은 내용에서도 큰 문제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분산에너지는 대규모 원전이나 석탄 화력발전에 의존하는 기형적 중앙집중형에 대비되는 개념이지만, 한국의 법안이 이러한 제도적 취지를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중앙집중형과 다르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통상적으로 세 가지 정도가 있다.
첫 번째는 '발전 용량'이다. 유럽은 대규모와 소규모를 구분하는 발전 설비의 기준으로 5만 킬로와트를 채택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에 국회 심의에서 추가된 소형 원전은 30만 킬로와트로 통상적인 분산형의 여섯 배에 달할 정도로 큰 발전소이다. 물론 100만에서 140만 킬로와트 규모의 다른 원자력 발전소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이기 때문에, 기업이나 공장이 자가 소비용으로 도입하거나 중소 도시에서 바로 소비될 정도로 가까운 발전소라면, 분산형이라고 우기는 근거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럴 경우에는 다른 대규모 가스복합발전이나 석탄 화력도 자가 소비를 근거로 동일한 혜택을 요구하면서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이와 관련되는 두 번째 기준이 '공급 거리'이다. 분산에너지라는 개념 자체가 멀리 떨어진 대형 발전소에 의존하지 않고, 소비 지역에서 직접 전력을 공급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거리라는 공간적 요소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번에 공개된 시행령에서도 전력 공급에 필요한 154kV 송전선을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 시행령은 송전이 반드시 없어야 한다는 조항이 아니라, "추가 건설이 최소화될 것"으로 규정해 송전탑의 설치를 허용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분산에너지의 취지에서 벗어나고 있다.
앞의 두 가지 논쟁적인 기준만큼이나 중요한 세 번째 기준이 전력의 '생산 주체'이다. 즉, 누가 발전소를 운영해 전력을 생산하느냐가 분산에너지를 판단하는 기준일 수 있다. 지금처럼 거대한 국가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독점하는 상황은 중앙집중형일 수밖에 없으며, 반대로 제주에너지공사나 태양광협동조합처럼 지역의 이해관계자에 의해 전기가 생산될 때는 분산에너지로 구분이 가능하다. 물론 입법 예고된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한전이 사업 주체여야 한다는 독소 조항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법률 전반에서는 중앙정부가 모든 것으로 결정하도록 규정하는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분산에너지법'에서만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100여 번 언급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들 수 있다. 제도 시행의 책임 및 의무를 대부분 중앙정부에 부과하고 있으며, 법률의 주체를 산업부로 명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분산에너지 활성화 기본계획'을 장관이 작성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분산에너지특화지역의 선정도 산업부 장관이 하도록 권한이 부여돼 있다. 반면에 지방자치단체인 시․도지사는 20번 명시된 데 그친다. 내용상으로도 이들 자치단체장에게 부여된 권한은 장관과의 협의 혹은 사업자의 신청서를 받아서 전달하는 통로 역할 정도로 제한돼 있다.
게다가 산업부의 지시로 정부 업무를 대행하는 한국에너지공단은 '에너지이용합리화법'에 의거해 설립된 공공기관임에도 불구하고, 분산에너지법의 중요한 실행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 과거에도 수요관리를 전담하기 위한 조직인 공단에 신재생에너지센터가 추가되면서 공급을 담당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번 법률을 계기로 분산에너지진흥센터까지 맡아서 운영하는 방향으로 시행령이 선포된 상태이다. 한마디로 산업부가 주도하는 분산에너지 사업의 손발을 공단이 맡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분산에너지는 단순히 대형 발전소를 흩뜨려 놓는 기술적인 형태에 국한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는 파워(power), 즉 전력 및 권력의 지역 분산화로 귀결돼야 한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한국의 에너지정책은 '新지방분권화'와 '新중앙집권화'가 충돌하는 상황이다. 이번 분산에너지법은 명칭 때문에 중앙보다는 지자체에 가까울 것 같지만, 실상은 산업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이 되고 있다.
그나마 한 가닥 희망이라면, 해당 법률이 한시적 특별법 형태로 마련되었다는 사실이다. 국회에서 잘못된 통과된 법률을 새로 대폭 개정하거나, 이번에 공지된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전면 재편할 수 없다면, 차라리 빠른 시일 내에 특별법을 폐기하고 바람직한 방향의 일반법으로 제도적 틀을 다시 구성하는 게 대안일 수 있을 것이다. 특별법은 제한적․한시적이거나 특별한 대상에 국한해서, 가급적 짧은 기간 동안만 존속되는 게 바람직하다. 물론 분산에너지특별법도 마찬가지이다.
* 본 칼럼은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원문보기(2024.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