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발광정의로운 전환의 단초를 보여줄 3.30 충남노동자행진/한재각 기후정의동맹 집행위원

2024-03-24

[초록발광] "석탄발전은 멈춰도, 우리의 삶은 멈출 수 없다"

정의로운 전환의 단초를 보여줄 3.30 충남노동자행진

한재각 기후정의동맹 집행위원


송상표. 발전공기업의 협력업체인 금화PSC의 공공운수노조 지부장이다. 충남 태안에 있는 석탄발전소 설비를 정비하는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로 이십 년 이상 일해 오다가, 노조 활동가가 되었다. 발전 비정규직 김용균 씨의 안타까운 사고를 계기로,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싸움에 앞장서고 있다. 그러다가 처음에는 미세먼지, 얼마 후에는 기후위기 문제가 불거지면서 자신들이 일하고 있는 석탄발전소를 폐쇄한다는 소식에,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며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암 진단을 받은 사람들과 비슷하다."


언젠가 그는 탈 석탄정책으로 폐쇄가 예고된 석탄발전소의 노동자의 처지를 이렇게 비유했다. 가동된 지 30년 이상 된 노후 석탄발전소가 이미 폐쇄되었고, 2025년 말에는 자신이 일하는 태안 석탄발전소도 1, 2호기부터 폐쇄가 시작된다. 이때부터 2030년까지 매년 태안, 보령, 삼천포, 하동 등지에 위치한 4~6기의 석탄발전소가 집중적으로 폐쇄될 예정이다. 정부는 LNG발전소를 대체 건설한다고 하지만, 거의 절반의 인력만으로도 가동할 수 있어 나머지 절반의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 


암 진단을 받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환자처럼, 석탄 발전 노동자들도 어찌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정부는 교육 지원과 직업 소개를 해줄 테니 일자리를 다시 찾아보라는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평생 지금 일을 해온 노동자들에게 그게 쉬울 리가 만무하다. 게다가 오랜 삶의 터전인 지역을 떠나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찾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더 막막한 일이다. 노동자만이 아니라 함께 사는 가족의 삶도 고난에 휩쓸리고, 가뜩이나 위태로운 지역사회도 주저앉게 될 판이다. 그러나 예고된 폐쇄의 시간은 다가오는데, 정부와 지자체, 발전공기업과 협력사 모두 팔짱만 끼고 있다. 그는 항상 웃고 있지만, 그 마음이 어떨지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석탄발전소가 기후악당이라니 우리도?" 


송상표 지부장이 일하는 서부발전의 태안발전본부에는 석탄발전기만 10개가 가동되고 있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2시간 이상 떨어진 태안 읍내, 그곳에서도 석탄발전소를 볼 수 없다. 차로 30분 정도 더 달려야 바닷가 옆에 높이 선 발전소의 거대한 굴뚝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곧 석탄을 태우고 전기를 만드는 설비를 담고 있는 거대한 건물들이 보인다. 대도시에 사는 이들은 한 번도 보지 못했을 풍광이 펼쳐진다. 그들이 쓰는 전기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오랫동안 경제를 돌리고 사람들의 삶을 편리하게 해준 전력을 생산하는 곳이었지만, 얼마 전부터는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마구 배출하는 '기후악당'이라고 비난받는 곳이다. 


송상표 지부장을 비롯하여 발전노동자들은 '기후악당'이란 말에 여러 번 마음이 베였다. 변방에 위치한 석탄발전소에서 더럽고 위험한 일을 해왔지만 '산업역군'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고마운 발전소이기도 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석탄발전소를 '기후악당'이라고 부르니 자신들도 기후악당의 일부인 듯 마음이 편치 않다. 석탄발전소 앞에 찾아서 '기후악당 석탄발전소 폐쇄하라!'는 시위를 했던 환경운동가가 해명했듯, 석탄발전소가 기후악당일 수는 있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기후악당일 리는 없다. 그 점을 모르지는 않지만, 발전노동자들은 곤혹스러움과 억울함을 쉽게 떨칠 수는 없다. 


"석탄발전소 폐쇄에 동의하지만..."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삼척에 짓고 있는 석탄발전소 건설을 중지시키기 위한 '탈석탄법(안)'을 개발하고, 작년에 발전노동자에게 양해를 구하러 간 적이 있다. 전국 각지의 발전 비정규직 대표자들이 탈석탄 정책으로 야기된 고용불안에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하는 회의, 그 마지막에 잠시 시간을 얻었다. 생각해 보면, 무슨 용기로 그런 자리에 탈석탄법(안)을 들고 찾아가 설명하려 했는지, 또 발전노동자들은 어떤 아량으로 시간을 내주었는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발전노동자들이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석탄발전소 폐쇄에 "애틋하게 동의"한다고는 했다 하지만,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의 중단을 담은 법안 설명은 어찌 생각하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일 수도 있었다. 날 선 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인내심을 가지고 탈석탄법(안) 설명을 들어주고 이해해 주었다. 


당시 삼척 석탄발전소 건설은 막아야 한다는 다급함에 입법청원도 하고 탈석탄법(안)도 만들어 제안했지만, 폐쇄되는 석탄발전소 노동자들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별다른 제안은 하지 못했다. 발전노동자들에게 양해를 구한 기후활동가 모두의 마음에 무거운 짐이 생겼다. 그 마음이 어떻게라도 대안을 만들어 함께 싸우자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최근에 노동조합과 기후환경단체들이 함께 시작한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의 동기 중 하나가 되었다. 국가가 대규모 공적 투자로 체계적이고 신속하게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이를 통합된 발전공기업이 수행하면서 석탄발전소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보장하자는 제안이자 운동이다. 다행히,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에 대해서 발전노동자들의 노동조합도 함께 하기로 뜻을 모으고 있다. 


3월 30일, 태안에서 '충남노동자행진' 열린다


가장 무서운 일은 이대로 시간이 흘러, 내년 12월 무력하게 태안 1, 2호기 폐쇄를 맞이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대책 없이 일자리를 잃고, 대신 만들어지는 재생에너지 발전소는 민간 자본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 두렵다. 무수히 언급되고 있는 정의로운 전환은 그저 말 잔치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나게 될 지도 모른다. 그전에 거대한 사회운동을 만들어 내야 한다. 발전노동자들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서, 구체적으로는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서 거대한 사회운동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 출발점이 3월 30일, 태안에서 개최될 충남노동자행진이 될 수 있다.


석탄발전소 폐쇄를 앞둔 충남의 발전노동자들이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며, 전국의 노동자와 시민에게 3월 30일 충남 태안에서 함께 행진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충남노동자행진이라고 해서 충남만의, 그리고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서의 정의로운 전환이 가능할지, 또 어떤 모습일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첫 싸움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과연 정의로운 전환을 이룰 역량이 있는지, 여기에서 시험 무대에 오르게 된다. 충남이 아니라 다른 지역의 시민, 발전산업이 아니라 다른 산업의 노동자가 이번에 태안에 모여 싸워야 할 이유다. 


'기후정치'는 어디에서 출발해야 하나


총선도 앞두고 있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기후부정의가 심화하는 만큼, 기후정치 목소리도 크다. 하지만 그 현장이 어딘지는 아직 모호하다. 정의로운 전환과 공공재생에너지를 외치며 모여드는 330 충남노동자행진과 같은 현장에서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에 의한 '기후정치'가 싹트고 성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후정치는 여론조사를 통해서 기후유권자를 발견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기후부정의에 맞서 스스로 조직하고 싸우려는 이들이 세력화하려는 노력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어야 한다. 


3월 30일 충남노동자행진은 무엇보다도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인 발전노동자가 먼저 나서서 제안한 자리라는 점을 주목한다. "기후위기 모르겠고 내 일자리나 지키겠어!"라는 마음이 아니라, "기후위기 막아야 한다. 안타깝지만 일하는 석탄발전소 폐쇄 불가피하다. 공공이 만드는 재생에너지산업에 계속 일하고 싶다. 함께 싸워 달라!"라는 마음으로 제안하는 자리다. 이에 호응하여 전국의 노동자와 시민이 태안으로 달려가서, 함께 싸우겠다고 화답하는 것이 ‘기후정치’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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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칼럼은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원문보기(2024.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