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정칼럼세르비아 니슈에서 양배추를 볶다가, 짬뽕 없는 세상을 상상했다 / 박정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2023-11-24

[에정칼럼] 삶을 풍성하게 하는 다른 생활방식 찾자 

세르비아 니슈에서 양배추를 볶다가, 짬뽕 없는 세상을 상상했다


박정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불가리아에서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으며 검고 너른 밭에 널부러져 있는 초록 잎사귀들이 꼭 양배추 겉잎 같았다. 역시나 조금 더 지나니 트럭과 수레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양배추들을 볼 수 있었다. 양배추를 생으로 아작아작 씹어먹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양배추 요리도 좋아하는데 왠지 쌀 것 같아 은근 기분이 좋았다.



실제로 마트에서 사도 양배추 한 통에 한화로 700원 정도이고 재래시장에는 단단하고 반질반질한 양배추가 쌓여 있다. 쌈장이 있으면 쪄서 쌈으로 먹으면 정말 좋겠지만, 한국을 떠난 지 40일이 훌쩍 넘었고, 아직 아시안 마켓에 들른 적이 없어 쌈장은 무리다. 하지만 동유럽은 소시지나 햄으로 유명하지 않나! 싱싱해 보이는 베이컨을 사서 양배추 볶음을 하기로 했다.



터키를 떠난 이후로 가스를 쓸 수 있는 곳이 없었고, 조리용 핫플레이트가 대부분이었다. 핫플레이트는 전기저항이 내부에 있어 전기가 흐르면 저항 때문에 열이 발생하고 그 열로 조리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열이 올라오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사용이 끝난 후에도 20분 정도는 열이 남아 있어 조심해야 한다.

나는 무엇보다 화석연료로 생산한 2차 에너지인 전기가 낭비되는 것 같아 너무 아깝다. 다시 열에너지로 전환하니 에너지 효율이 얼마나 낮을 것인가. 세르비아는 사용 전기의 50% 이상을 석탄으로, 약 35%는 수력으로 생산 중이다. 전기요금은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아주 싼 편인데, 석탄 생산량이 많아서인지 그리스의 1/5, 스페인의 1/4, 독일의 1/3 정도이다.



세르비아는 유럽연합(EU) 가입후보국으로, 2020년 11월 ‘서발칸 국가 녹색의제에 관한 소피아선언’(Sofia Declaration on the Green Agenda for the Western Balkans)에 참여하면서 기후위기 대응, 지속가능한 에너지, 순환경제, 오염제거, 지속가능한 농업 및 식량 생산, 생물다양성(이후에 지속가능한 교통이 포함됨)을 위한 노력에 합의했다.


소피아 선언은 EU와 서부 발칸반도 지역의 전략적 파트너십의 일환으로 EU 그린딜을 인정하고 격차를 맞추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2022년 12월 EU-서부발칸반도 정상회담으로 약속을 재확인한 바 있고, EU는 300억 유로에 달하는 경제 및 투자 계획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세르비아는 배출권거래제(ETS)를 도입하지 않았고, 2026년부터 일부 제품에 탄소가격을 포함시키려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후 ‘도매 에너지 시장 무결성 및 투명성에 관한 규정’(Regulation on Wholesale Energy Market Integrity and Transparency, REMIT)을 시행하고 에너지 효율 부분에서 진전이 있으며 재생에너지 제도적 틀을 완성하는 데도 진전이 있다고 평가 받고 있다. 그러나 ‘대형발전소의 환경규제’(Large Combustion Plant Directive)를 지키지 않아 소송이 진행 중이다. 자발적인 기후위기 대응이나 에너지전환이 아니라, EU 가입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하여간 최근 들어 세르비아의 녹색전환 움직임에 작은 변화가 있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어쨌든, 양배추를 볶으며 내게 닥친 문제는 불이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가스불을 세게 해 웍 같은 큰 용기에다 넣고 빠르게 볶아야 물이 안 생기고, 캬라멜라이징 되면서 간장을 살짝 넣었을 때 그 짭쪼롭하고 달달한 향이 배이면서 맛난 볶음이 되는 건데, 하아… 불을 쓰고 있는데도 불이 필요한 느낌이다. 이 집이 그런 것인지 세르비아 전체가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핫플레이트 불이 너무 약하다. 호스트는 핫플레이트 단계를 2나 2.5에 놓고 쓰라고 했는데, 핫플레이트에서 제일 쎈 3으로 놓아도 물이 증발하는지 끓는지 모르겠다.

뉴욕주는 2026년부터 신축건물에 가스레인지나, 가스보일러 등 화석연료 사용이 금지된다. 이제부터 새로 짓는 건물은 모두 인덕션이나 핫플레이트를 놓아서 전기화 한 불을 써야 한다. 대형 상업·공업용 건물은 제외되는데 뉴욕시에 있는 중국집이나 웍을 쓰는 음식점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10년 20년 뒤에는 활활 센 불에 휘리릭 볶거나 끓여서 먹는 음식들은 사라질까? 불맛 나는 짬뽕은 불맛 첨가물을 넣어 파는 걸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상상의 나래를 펴다가, 어쩔 수 없이 기후위기 정책까지 가버렸다. 석탄화력발전소를 닫고 태양광을 늘리고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고 것이, 정책과 제도로서만이 아니라,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지금과 어떻게 다르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더 많이 이야기하면 좋겠다. 아파트 분양할 때 주차장 없는 아파트를 만들고 분양가를 파격적으로 낮추거나, 혼잡통행료를 과감하게 부과하고 부담하지 않는다면 차를 압수하거나, 대단지 아파트나 건물은 수요관리를 통해 지하의 비상 발전기들을 의무적으로 가끔 돌리거나, 도시가스관 설치 보조금 지원을 일몰 기간을 두고 중단하거나, 가스(석유)난로 생산을 금지할 수도 있다. 이런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훨씬 더 많이 회자되어야, 재치 있고 발랄한 아이디어들도 많이 나올 수 있다.




기후위기 때문에 반드시 우울하고 결핍된 삶을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면서 삶을 풍성하게 하는 다른 생활방식을 찾고 그 안에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 기후위기가 일상인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삶을 만들어 가면서 살 권리와 책임이 있다. 우리가 어떤 삶과 비전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하면 된다. 짬뽕을 포기할 것인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 먹을 것인가?

덧, 핫플레이트로 충분히 맛난 짬뽕을 만들 수 있었다.



* 본 칼럼은 레디앙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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