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發光] 과학기술의 하위 분야인 원자력의 제자리 찾기 해야
尹정부 이공계 홀대 와중에도 풍족한 원자력계, 왜?
진상현 경북대학교 행정학부 교수
서울 강남역과 역삼역 사이의 테헤란로에는 한국과학기술회관이라는 높고 멋들어진 건물이 하나 있다. 대한민국 과학의 산실이며,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자리 잡은 공간이기도 하다. 이 연합회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의 기틀을 마련한 산파였다. 구체적으로는 1966년 5월 발명의 날을 기념해서 개최되었던 과학기술자대회에서 연대체인 과총이 필요하다는 결의가 이루어졌으며, 같은 해 9월의 창립총회 직후에는 정부 조직 내에 전담 부서가 필요하다고 제안함으로써, 이듬해에 과학기술처가 신설되어 현행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뿌리가 마련될 수 있었다.
이처럼 오랜 과학기술정책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아이러니하게도 주객이 전도된 출생의 비밀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한국 과학기술의 기형적이고 비정상적인 뿌리는 바로 원자력과 관련이 있다. 통상적으로는 과학기술이 최상위의 개념이며, 물리, 화학, 생물, 전자, 기계 같은 하위 분야로 세분화된다. 원자력은 핵분열을 이용해서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과학기술의 하위 영역이라는 게 당연한 상식이다. 그렇지만 한국 과학기술의 발전 과정은 이러한 순리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의 주인공인 이승만 대통령은 이념 대립으로 인해 분단된 조국 통일을 위해 2차 세계대전 종식의 핵심 기술이었던 핵무기를 보유하고 싶어 했다. 당시 핵폭탄 관련 기술을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던 미국의 협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양국 사이에 '한미 원자력 협정'이 1955년에 체결됐다. 그렇지만 그 무렵 패권국가로 자리 잡은 미국은 협약 명칭에서부터 '원자력의 비군사적 이용에 관한 협정'이라고 명시함으로써, 핵보유국이라는 한국의 바람이 실현되지 않도록 원천에서부터 막아놓고 있었다. 다만 당시 소련과의 냉전체제가 시작되면서, 미국은 원자력 경쟁에 동참해 준 동맹국에 대한 고마움으로 '트리가 마크 II'라는 연구용 원자로를 한국에 선물로 주었다. 1962년부터 가동에 들어갔던 이 원자로는 1995년에 수명을 다해, 지금은 원자력계의 상징으로서 2013년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외관만 보존되고 있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과학기술인이 결집하고 과학기술처라는 독립조직을 만들기 전부터, 원자력 관련 정부 업무가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1956년 문교부 산하의 원자력과가 담당하던 소규모 부서의 한계가 지적되면서, 1959년에는 별도의 원자력정책 집행기구인 원자력원이 설립되었다. 1967년에 신설된 과학기술처보다 빨랐던 원자력 전담 정부 조직은 자신의 업무 영역인 원자력을 넘어 과학기술 전반의 연구개발 자금까지 총괄할 정도로 영향력이 막대했다. 이처럼 한국의 원자력은 태생적으로 과학의 하위 분야가 아닌, 과학기술에 군림하는 위치에서 출발했던 왜곡된 역사적 뿌리를 지니고 있다. 더 큰 문제는 5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의 대한민국마저 비정상적인 구조를 여전히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전 정부에서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와의 대립을 통해 정치인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탈원전 정책을 정략적 표적으로 삼았다. 구체적으로는 월성 원전 1호기의 폐로 과정에 청와대의 정치권력이 관여했다며 부패한 정권으로 매도한 뒤, 탈원전 폐기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당시에 같은 취지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날을 세웠던 최재형 감사원장은 현재 국회의원으로 변신해 종로 한복판의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월성 원전 1호기 소식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이다. 물론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윤 대통령이 정부 출범 이후에도 문재인 정부의 과실을 끊임없이 지적해 왔던 것에 비하면, 의아할 정도로 비판이 잦아든 실정이다. 심지어 의혹을 제기한 몇몇 사안에는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이보다 더 당혹스러운 부분은 윤 대통령이 지난해 과학기술 분야의 카르텔 척결을 전면에 내걸고 이공계의 연구개발 자금을 일괄 삭감한 사건이었다.
심지어 용산에서 비서관을 지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으로 부임해 얼마 전 퇴임한 조성경 명지대 교수는 대통령의 과학계 부패 척결이라는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고 긍정적으로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조성경 전 차관은 원자력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되어 이미 차관급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위원으로 근무했던 경력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조성경 교수는 학부만 이공계일 뿐이지, 정작 석․박사 학위는 언론학으로 받았다. 물론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다양한 전공 분야의 참여를 요구하고 있어서 언론학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조성경 차관의 석박사 학위 논문이 원자력의 대중 수용성에 관련된 연구이기 때문에, 최종학위에 기반해서 판단할 경우에는 과학기술계 인사로 분류하는 건 적합하지 않다.
실제로 조 전 차관의 고려대 박사학위 논문과 관련해서 표절 논란이 제기되었던 '주관성 연구'라는 학술지도 한국연구재단에서는 자연과학이나 공학이 아닌 사회과학 분야로 분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를 중시하는 한국의 문화적 풍토 때문인지, 조 전 차관은 원자력 전문가가 돼 과기부 차관으로서 이공계 카르텔을 혁파하는 임무를 맡고 말았다.
▲이권 세력의 카르텔 개혁을 요구하는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 카드뉴스
결과적으로 현 정부에서 과학기술계에 대한 핍박과 천대는 이공계 전문가들의 울분을 낳고 말았다. 모든 대학에서 이공대 교수들의 한탄이 들려오고 있다. 지난 2월 카이스트 졸업식에서는 축사를 위해 참석했던 윤석열 대통령에 항의하던 졸업생이 입을 틀어막힌 채, 강제로 퇴장을 당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처럼 이공계열의 곡소리가 가득한 지금의 시점에서, 정작 과학기술의 하위 분야인 원자력계에서는 불만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모든 이공계 분야의 연구개발 자금이 일괄 삭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의 원자력 기술개발 자금은 풍족해서 여유로울 지경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올해에는 예산을 문재인 정부의 5년 치까지 배정했다가 국회에서 삭감되었을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70년 전 과학기술 위에 군림하며 대한민국의 건국 역사를 만들었던 원자력은 21세기를 맞이한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공계로부터 자유로운 예외적 혜택을 누리고 있다. 지난 두 세기에 걸쳐 과학을 지배해 왔던 원자력을, 이제는 과학의 하위 분야의 하나로 어떻게 활용하고 방향을 잡아야 할 지를 차분하게 이성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원자력의 제자리 찾기는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가장 큰 숙제 가운데 하나이다.
* 본 칼럼은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원문보기(2024.3.19.)
[초록發光] 과학기술의 하위 분야인 원자력의 제자리 찾기 해야
尹정부 이공계 홀대 와중에도 풍족한 원자력계, 왜?
진상현 경북대학교 행정학부 교수
서울 강남역과 역삼역 사이의 테헤란로에는 한국과학기술회관이라는 높고 멋들어진 건물이 하나 있다. 대한민국 과학의 산실이며,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자리 잡은 공간이기도 하다. 이 연합회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의 기틀을 마련한 산파였다. 구체적으로는 1966년 5월 발명의 날을 기념해서 개최되었던 과학기술자대회에서 연대체인 과총이 필요하다는 결의가 이루어졌으며, 같은 해 9월의 창립총회 직후에는 정부 조직 내에 전담 부서가 필요하다고 제안함으로써, 이듬해에 과학기술처가 신설되어 현행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뿌리가 마련될 수 있었다.
이처럼 오랜 과학기술정책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아이러니하게도 주객이 전도된 출생의 비밀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한국 과학기술의 기형적이고 비정상적인 뿌리는 바로 원자력과 관련이 있다. 통상적으로는 과학기술이 최상위의 개념이며, 물리, 화학, 생물, 전자, 기계 같은 하위 분야로 세분화된다. 원자력은 핵분열을 이용해서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과학기술의 하위 영역이라는 게 당연한 상식이다. 그렇지만 한국 과학기술의 발전 과정은 이러한 순리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의 주인공인 이승만 대통령은 이념 대립으로 인해 분단된 조국 통일을 위해 2차 세계대전 종식의 핵심 기술이었던 핵무기를 보유하고 싶어 했다. 당시 핵폭탄 관련 기술을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던 미국의 협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양국 사이에 '한미 원자력 협정'이 1955년에 체결됐다. 그렇지만 그 무렵 패권국가로 자리 잡은 미국은 협약 명칭에서부터 '원자력의 비군사적 이용에 관한 협정'이라고 명시함으로써, 핵보유국이라는 한국의 바람이 실현되지 않도록 원천에서부터 막아놓고 있었다. 다만 당시 소련과의 냉전체제가 시작되면서, 미국은 원자력 경쟁에 동참해 준 동맹국에 대한 고마움으로 '트리가 마크 II'라는 연구용 원자로를 한국에 선물로 주었다. 1962년부터 가동에 들어갔던 이 원자로는 1995년에 수명을 다해, 지금은 원자력계의 상징으로서 2013년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외관만 보존되고 있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과학기술인이 결집하고 과학기술처라는 독립조직을 만들기 전부터, 원자력 관련 정부 업무가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1956년 문교부 산하의 원자력과가 담당하던 소규모 부서의 한계가 지적되면서, 1959년에는 별도의 원자력정책 집행기구인 원자력원이 설립되었다. 1967년에 신설된 과학기술처보다 빨랐던 원자력 전담 정부 조직은 자신의 업무 영역인 원자력을 넘어 과학기술 전반의 연구개발 자금까지 총괄할 정도로 영향력이 막대했다. 이처럼 한국의 원자력은 태생적으로 과학의 하위 분야가 아닌, 과학기술에 군림하는 위치에서 출발했던 왜곡된 역사적 뿌리를 지니고 있다. 더 큰 문제는 5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의 대한민국마저 비정상적인 구조를 여전히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전 정부에서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와의 대립을 통해 정치인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탈원전 정책을 정략적 표적으로 삼았다. 구체적으로는 월성 원전 1호기의 폐로 과정에 청와대의 정치권력이 관여했다며 부패한 정권으로 매도한 뒤, 탈원전 폐기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당시에 같은 취지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날을 세웠던 최재형 감사원장은 현재 국회의원으로 변신해 종로 한복판의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월성 원전 1호기 소식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이다. 물론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윤 대통령이 정부 출범 이후에도 문재인 정부의 과실을 끊임없이 지적해 왔던 것에 비하면, 의아할 정도로 비판이 잦아든 실정이다. 심지어 의혹을 제기한 몇몇 사안에는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이보다 더 당혹스러운 부분은 윤 대통령이 지난해 과학기술 분야의 카르텔 척결을 전면에 내걸고 이공계의 연구개발 자금을 일괄 삭감한 사건이었다.
심지어 용산에서 비서관을 지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으로 부임해 얼마 전 퇴임한 조성경 명지대 교수는 대통령의 과학계 부패 척결이라는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고 긍정적으로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조성경 전 차관은 원자력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되어 이미 차관급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위원으로 근무했던 경력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조성경 교수는 학부만 이공계일 뿐이지, 정작 석․박사 학위는 언론학으로 받았다. 물론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다양한 전공 분야의 참여를 요구하고 있어서 언론학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조성경 차관의 석박사 학위 논문이 원자력의 대중 수용성에 관련된 연구이기 때문에, 최종학위에 기반해서 판단할 경우에는 과학기술계 인사로 분류하는 건 적합하지 않다.
실제로 조 전 차관의 고려대 박사학위 논문과 관련해서 표절 논란이 제기되었던 '주관성 연구'라는 학술지도 한국연구재단에서는 자연과학이나 공학이 아닌 사회과학 분야로 분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를 중시하는 한국의 문화적 풍토 때문인지, 조 전 차관은 원자력 전문가가 돼 과기부 차관으로서 이공계 카르텔을 혁파하는 임무를 맡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현 정부에서 과학기술계에 대한 핍박과 천대는 이공계 전문가들의 울분을 낳고 말았다. 모든 대학에서 이공대 교수들의 한탄이 들려오고 있다. 지난 2월 카이스트 졸업식에서는 축사를 위해 참석했던 윤석열 대통령에 항의하던 졸업생이 입을 틀어막힌 채, 강제로 퇴장을 당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처럼 이공계열의 곡소리가 가득한 지금의 시점에서, 정작 과학기술의 하위 분야인 원자력계에서는 불만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모든 이공계 분야의 연구개발 자금이 일괄 삭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의 원자력 기술개발 자금은 풍족해서 여유로울 지경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올해에는 예산을 문재인 정부의 5년 치까지 배정했다가 국회에서 삭감되었을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70년 전 과학기술 위에 군림하며 대한민국의 건국 역사를 만들었던 원자력은 21세기를 맞이한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공계로부터 자유로운 예외적 혜택을 누리고 있다. 지난 두 세기에 걸쳐 과학을 지배해 왔던 원자력을, 이제는 과학의 하위 분야의 하나로 어떻게 활용하고 방향을 잡아야 할 지를 차분하게 이성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원자력의 제자리 찾기는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가장 큰 숙제 가운데 하나이다.
* 본 칼럼은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원문보기(2024.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