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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3-19 12:42
[언론기사] [함께하는 품 제5호]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 지역사회와 함께 지키자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7,230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 지역사회와 함께 지키자


경북 구미와 경기 화성 등 전자부품과 반도체 공장이 밀집한 공장에서 유해물질 관련 사고가 줄을 잇고 있다
. 지난 해 9월에는 구미국가산업4단지 휴브글로벌 공장에서 불산(불화수소산) 20톤이 누출되어 다섯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주민 12천명이 병원 치료를 받아 큰 충격을 주었는데, 올해 32일에는 LG실트론 구미2공장에서 질산, 불산, 초산이 섞인 혼산 수 십 리터가 외부로 유출되어 다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LG실트론 사고는 발생 15시간 만에 관계 당국에 신고가 이루어져 은폐 의도까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 보다 며칠 전인 128일에는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로 잘 알려진 기흥공장에 인접한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 11라인 화성공장에서 불산 유출 사고가 터져 1명이 숨지고 4명이 치료를 받는 사고가 있었다. 불산은 기체 상태로 체내에 흡수되면 점막과 뼈를 손상시키는 극도로 위험한 물질이다. 지난 해 9월의 구미 사고는 인근 주민들의 건강에 피해를 줌은 물론 농산물까지 허옇게 변하여 죽게 만들어 그 독성을 실감케 했다. 화학물질을 다루는 현장에서의 사고는 해당 공장을 넘어 곧바로 지역사회 전체의 사고가 된다.


                      사진 1. 삼성전자 화성공장 불산누출 항의 기자회견

그런데 이러한 산업 독성물질 유출 사고가 최근에 빈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언론의 보도를 보면 당국의 유해물질 점검과 안전망 구축이 소홀했다, 또는 현장의 안전불감증이 원인이다 하는 식의 진단이 많다. 이는 매우 피상적일뿐더러 언제나 할 수 있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물론 정부에 통합적 안전관리 체제 구축을 요구하는 일은 중요하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가 정부의 공무원 기구 축소를 이유로 대구지방 환경청 구미출장소를 14년 만에 폐지한 것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의 급증 원인에 대해서는 다른 설명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우선 두 가지 이유가 먼저 짐작된다. 첫째는 발견 건수의 단순한 증가일 수 있다. 특정 물질에 대한 기준이 강화되거나 측정기법이 발전하는 경우 그 전까지 무해하고 안전하던 것이 유해한 것으로 카운트될 수 있다. 또한 유해물질과 사고의 발견과 보고는 사람이 하는 것인 만큼, 이제까지 기준에 미달하더라도 무감하게 지나치거나 묵인되거나 감추어졌던 경우들이 높아진 경각심 덕분에 인지되고 보고되는 경우가 증가할 수 있다.

말하자면 반도체 산업의 산업재해와 독성물질 사고도 근래에 들어 갑자기 많아진 것이 아니라, 작년 9월 구미 불산 사고를 계기로 더 많이 알려지게 된 게 아니냐는 것이다. LG실트론 혼산 유출 사고 역시 공장 내부 직원의 제보로 뒤늦게 알려졌다는 것을 보아도 내부고발자의 역할이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둘째는 외주 하청의 증가가 가져온 결과 중 하나일 수 있다. 하청업체나 협력업체가 유해한 물질이나 위험한 공정을 맡을 경우 사고의 발생 가능성 뿐 아니라 대응에 있어서도 당연히 차이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 화성공장의 사고에서 희생당한 노동자들만해도 불산 공급설비 밸브교체 작업에 투입된 협력업체인 STI서비스 소속이었다.

진보신당의 최김재연 경기도의원은 한 기고문(“그는 왜 죽음의 공포를 호소하지 못했나”, <프레시안> 201333)에서, 방역 협력 업체의 노동자가 불산이 누출되어 흐르는 것을 알면서도 탱크 가동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기는커녕, 흐르는 불산을 비닐봉지에 받아가며 그것도 화학 약품을 막는 방산복(방진복이 아닌)도 지급받지 못한 상태로 보수 작업에 묵묵히 투입되었는가 하고 질문했다. 불산에 1차 노출되었던 노동자는 귀가했다가 다시 새벽에 불려나와 작업을 하다 2차 노출로 사망에 이른 것도 경악스럽지만, 사업장 안의 삼성병원이 아닌 바깥 병원으로 간 것도 삼성에 사고가 알려지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20119월에는 울산 현대중공업과 세진중공업 등에서 10년째 선박 비파괴검사를 해 온 한 노동자가 백혈명으로 숨진 일이 있었다. 이 노동자는 방사능 검사 장비업체인 KNDT&I 소속으로, 역시 외주 계약으로 주요 조선소의 작업에 투입되었다. 원자력안전법에 따르면 방사선 작업 종사자의 선량한도는 연간 50밀리시버트(mSv), 분기 5밀리시버트 미만으로 제한되어 있고 방사선 투과 업무는 반드시 두세 명이 같이 작업해야 했지만 이러한 규정들은 지켜지지 않았다. 방사선 피폭을 측정하는 필름배지도 지급되지 않았고 홀로 선박 구조물 속으로 기어들어가서 작업하는 일도 많았으며, 하루 기준 작업량 보다 7배나 많은 조사 작업을 하는 날도 있었다고 한다.

위험한 일일수록 하청, 하도급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은 원청도 책임을 덜 수 있고 비용도 줄일 수 있는 탓이다. 그러나 하청 업체들은 규모와 전문성도 적고, 하도급 과정에서 줄어든 작업비로 일을 마쳐야 할뿐더러 골치아픈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계속 재계약을 해야 하기 때문에 관리 소홀과 사고 은폐를 유발하는 동기가 되는 것이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핵발전에서 외주 비율이 아직 높지 않지만, 일본은 많게는 9단계에 이르는 하청 구조의 문제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이슈가 된 바 있다. 가장 위험한 핵발전소 관리와 사고 수습에 심지어 야쿠자 조직이 개입하여 노동자들을 모집하여 투입하는가 하면, 아랫 단계의 하청업체 관리자가 노동자들의 방사능계측기에 고의로 납판을 덮어 측정선량을 하향시키기도 했다는 것이다.

다단계 하청이 노동자들의 주머니와 건강을 모두 갉아먹고 국민들의 안전마저 위협할 수 있다면, 전자산업의 외주 하청 증가 경향이 실제로 얼마나 유해물질 관련 사고를 증가시키고 사고 대응에 장애를 초래하고 있는지 전국의 모든 공단 지역에서 면밀한 조사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앞으로 이러한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작업장에 대한 노동조합의 산업안전 활동이 강화되어야 함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에서 그리고 경북과 경기의 제조업 공단에서도 노조 조직률이 턱없이 낮다면, 그리고 사고빈발 사업장일수록 노동조합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하청과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장의 담벼락을 넘어 지역과 함께 하는 산안 네트워크가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공단에서 다루는 물질, 주변의 공기와 하천, 사고 발생시의 영향은 모두 지역사회의 일이기도 하다.

2009년 한국에 출간된 <세계 전자산업의 노동권과 환경정의(Challenging the Chip, CTC >(메이데이)는 전자산업의 유해물질과 사고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통적인 것이며, 지역사회를 통해 유력한 대안을 찾을 수 있음을 알려준다. 환경정의 활동가들이나 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환경을 사람이 살고 일하고 활동하는 곳으로 정의해 왔을 뿐더러,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유해물질들과 일터에 존재하는 유해물질들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이렇게 기존의 환경 개념을 폭넓게 재해석하면 작업장에서 발생한 독성물질이 가정과 지역사회로 이동하고는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자와 환경운동가들이 힘을 합치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사진2. 애플의 ‘독성 폐기물’에 항의하는 SVTC(2006년)


이 책에서도 소개된
1982년에 설립된 실리콘 밸리 독성물질 방지연합(SVTC)’은 이미 제법 알려진 사례다. SVTC는 설립 초기부터 지역 주민과 노동자들이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인 독성물질들에 대하여 지역사회의 알 권리를 주장해왔고, 1983년에는 이를 강제하는 법과 조례를 통과시키는 첫 승리를 거두었다. 이는 이후 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운동(CRT)’으로 이어졌고 국제적으로도 확산되었다. 노동자와 지역 주민이 작업장의 안전을 모두의 일로 여기게 될 때, 그리고 이러한 물질과 제품들의 연관 고리들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더욱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한 통제력을 갖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 산안 문제를 지역 수준으로 확대하여 공동의 관리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문제가 되고 있는 공단 도시들에서 지역 일반노조의 역할을 산안 부문으로 특히 확대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지역본부가 주도해서 지역의 사회운동 역량을 모아 SVTC와 유사한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작업장과 지역사회를 위한 연대체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를 통해 유해물질에 대한 충분한 정보 공개와 노동자/지역주민의 개입과 협의를 요구하는 것이 시작일 수 있겠다. 구미, 화성은 물론이고 여천, 울산, 군산, 거제, 창원에서 각자 모델 만들 수 없을까?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진보신당 녹색위원장

* 이 칼럼은 평등사회노동교육원의 [함께하는 품] 제5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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