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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3-29 15:28
[언론기사] [한겨레21]원자력 마피아가 만든 신화가 무너진다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3,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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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마피아가 만든 신화가 무너진다 [2011.03.25 제853호]
[표지이야기] 국가·대기업 주도로 만들어진 원자력 신화의 나라 일본과 한국…
‘원전 수출’ 보랏빛 전망까지 닮았던 한국은 일본의 전철을 밟을까
  
2011년 3월15일 오후 3시30분, 한 포털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10위권에 바람 방향, 방사능 유출 피해, 체르노빌 원자력발전, 낙진이 들어 있었다. 이튿날 오후 3시30분 ‘오늘의 핫토픽 키워드’는 ‘방사능 공포 확산’을 1위로, ‘지진 루머 유포자 수사’, ‘요오드 문의 급증’이 상위 10위 안에서 오르내렸다. 한국 쪽 포털이다.

일본에서 대피 행렬이 이어지던 때다. “문제없다”만 되풀이하던 일본 정부는, 사고 발생 닷새째(3월15일) 대피령을 내려야 했다. “후쿠시마 원전 반경 20km 내 대피, 30km 내 옥내 대피.” 한 일본인 기자(도쿄 거주)는 그날 밤 12시 하네다 공항에 도착해 밤을 지새웠다. 이튿날 아침 8시 한국인 아내와 4개월 된 아기를 한국행 비행기에 실었다. 가슴을 쓸었을까, 홀로 쓸쓸했을까. 그는 “두려워서 (가족만이라도) 도쿄 탈출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항공료는 11만엔(157만원 남짓). 평소의 3배가 훌쩍 넘는다.

한국은 후쿠시마 원전과 1300km가량 떨어져 있다. 정부 기관의 분석대로 편서풍이 방사능 위협을 막아줄진 몰라도, 한국 또한 이미 피폭된 것이나 다름없다. 일본을 뒤덮은 ‘공포’에 여과 없이 오염된 셈이다. 한국 정부는 3월17일 한국 교민들에게 반경 80km 밖으로 대피할 것을 권고했다. 무엇보다 한국의 원전 정책은 일본의 것을 빼닮았다. 이른바 ‘원전 신화’부터 견고하게 공유해왔다. 일본의 ‘오늘’이 한국의 ‘내일’이 되고 있는 셈이다.

핵기술 상업화 필요가 낳은 결과

1953년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평화를 위한 원자력’을 선언하고 나선다. 막대한 국가 비용을 들인 핵기술을 상업화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담겼다. ‘핵무기-핵상업시설’의 연계다. 정작 산업계는 원전의 ‘상업성’에 회의적이었다. 미 정부가 내놓은 두 가지 ‘당근’이 이를 방증한다. 상업용 원전을 건설하는 기업들에 건설 비용의 25%를 지원한다. 보험회사가 원전 사고 보상을 거부하자, 프라이스-앤더슨법을 제정한다. 피해자들에게 지불해야 할 보상액의 1할만 핵발전 사업자한테 지웠다.

» 3월18일 후쿠시마 원전의 일부 전력 복구가 임박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사고 발생 8일 만의 첫 ‘복음’이다.연합 AFP

신화의 알짬인 원전의 경제성과 안전이, 사실상 정부·사업자의 경제성과 안전에서 비롯한 셈이다. 2차 대전 패전 뒤 미국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 있던 일본이 1954년 원자력산업 지원 예산안을 통과시킨 건 자연스럽다. 핵개발 경쟁 구도에서 일본의 구실도 필요했다. 세계적 반핵 과학자 다카키 진자부로는 “자연스러운 기술 도입이 아니어서, 여러 신화가 필요했던 것”이라고 자신의 저서에서 회고한 바 있다.

나랏돈이 모이니 대기업·학계가 줄을 선다. 값싼 에너지, 안전 에너지, 무한 에너지 신화가 더 강화된다. 임성진 전주대 교수(환경에너지정책학)는 “이렇게 다져진 이너서클을 ‘핵 권력집단’으로 부른다”고 말한다. 공급으로 수요를 창출하고 이권을 나눠갖는 ‘핵 마피아’다. 임 교수는 “지구상 어느 나라도 민간자본이 원전을 시작하지 않았다”며 “국가가 공공자금으로 사업성을 메워주면서 원전의 경제성을 만들어준 것”이라고 말한다.

1973년 오일쇼크는 원전 산업에 호재였으나, 전력 수요가 예상만큼 늘지 않았다. 1970년대 중반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전세계 핵발전 공급용량을 1980년 225기가와트(GW)로 예측했으나 실제는 135GW였다.
미국 스리마일 핵발전 사고(1979년)가 터진다. 3월이었다. 옛 소련 체르노빌 사고(1986년)가 터진다. 4월이었다.
IAEA가 1150GW일 것으로 예측한 1990년의 발전용량은 329GW,2000년의 2300GW 예측은 352GW(전체 439기)로 나앉았다.

도호쿠처럼 가난한 농어촌 지역 파고들어

1975년 지진 안전에 대한 우려로 핵발전소 산업을 ‘용도폐기’한 그리스를 위시로, 오스트리아(1978년), 스웨덴(1980년), 오스트레일리아(1983~86년), 노르웨이(1984년), 이탈리아(1987~90년), 스위스(1990년), 네덜란드(1994년), 아일랜드(1999년) 등이 한시적·영구적 원전 건설 금지, 가동 중 원전의 단계적 폐쇄 등을 법제화하거나 정부 정책으로 삼는다.

스웨덴은 그해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원전 포기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까지 실시했다. 미국에서도, 스리마일 사고 이후 2000년 전까지 핵발전소 추가 발주는 ‘0’이었다. 1973년 이후 120건의 핵발전소 계약들도 취소돼온 터다. 현재 104기의 핵발전소를 가동하며, 제1의 원전대국을 자임하는 국가(전체 전력 대비 원전 점유율은 19%)의 과거다.

서재철 녹색연합 국장은 “일본과 한국만 유독 (원전에 대한) 맹신 속에 살아왔다”고 말한다. 전체 전력 대비 원전 점유율은 두 국가가 각각 25%, 35%를 차지하며 프랑스(76%)의 뒤를 잇는다. 서 국장은 “일본에서 원전 건설은 반대 목소리가 특히 약했는데, 고도성장기에도 혜택을 보지 못한 일본 내 가장 가난한 농어촌을 보상을 미끼로 공략한 이유도 크다”고 말한다. 도호쿠 지역부터 그렇다. 여느 국가와 달리, 체르노빌 사고 이후에도 2곳의 신규 원전 부지가 추가 허용될 수 있었던 배경일 것이다.

문제는 공급으로 수요를 창출하고 이권을 나눠갖는 ‘핵 마피아’다. 임성진 전주대 교수는 “어느 나라도 민간자본이 원전을 시작하지 않았다”며 “국가가 공공자금으로 사업성을 메워주면서 원전의 경제성을 만들어준 것”이라고 말한다.

원전이 수출 효자종목으로 포장되는 형국도 두 나라는 닮았다. 때마침 2000년대 중반 들어 기후변화 시대, 대안 에너지라는 신화까지 더해졌다. ‘원전 르네상스’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6월 향후 10년 신성장 전략으로 ‘원전 수출’을 내세웠다. 9월 간 나오토 총리는 원전 대기업 히타치 출신의 오하타 아키히로를 새 경제산업상으로 세웠다. 그리고 10월 말 베트남의 원전 2기를 일본이 수주했다고 발표했다. 정식 계약은 아니었다. 베트남 총리와 일 총리 간 공동성명을 통해 파트너십을 공표한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안전·기술 따위 내실보다 포장·실적에만 치중하게 되는 ‘신화’의 한계를 거듭 증명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정작 지진이 아닌, 대응 부재, 우유부단한 정책·기술적 판단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3월11일 후쿠시마 원전 1호기의 사고는 발생 5시간 만에 공개됐다.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은 “(그러나) 현재로선 방사능이 유출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사고 발생 30시간 뒤 바닷물 투입을 결정한다. 3월15일 관방장관은 “1, 2, 3호기에는 안정적으로 물을 주입하고 있다”며 “제1원전 주변의 방사성 측정치는 내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튿날 정부는 헬기를 이용한 바닷물 투하를 지시해야 했다.

간 나오토 총리는 2호기 폭발 사실을 TV로 알았다. 1시간 뒤 정식 보고받았다. 도쿄전력 쪽에 직접 화를 냈다고 한다. 도쿄전력은 3월15일 새벽 제1원전 정문에서 높은 수준의 방사선량을 측정했으나 바로 앞서 2분 전 측정된 상당히 낮은 수치를 공개했다 들통나기도 했다.

간 나오토 총리는 2010년 10월 ‘원전 수출’ 전략을 위해 ‘국제원자력개발주식회사’도 발족시켰다. 도쿄전력, 히타치, 도시바, 미쓰비시중공업 등이 공동 출자했다.

» 세계에서 원전 의존율이 가장 높은 프랑스에서도 지난 3월15일 원전 반대 시위가 펼쳐졌다.연합 AP

안전 신화와 경제 신화는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다. 스리마일 사고 당시 10만~20만 명이 강제 또는 자발적으로 대피했다. 오염지역 복구작업, 소송과 보상 등으로 지출된 비용은 12억달러에 이르렀다. 원전 건설 비용은 7억달러다. 체르노빌 사고의 피해 내역, 복구 비용을 새삼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반영구적으로 요구되는 사후처리 비용도 문제다. 한국도 핵폐기장 선정으로 상상 못할 사회적 비용이 투입되고 있다. 이 또한 대개 국민의 몫이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독일은 신규 원전 건설 중단, 기존 원전 폐쇄를 결정했다. 1999년이다. 원전에 투입할 역량을 신재생에너지쪽으로 돌렸다. 2010년까지 전체 전력 공급의 12.5%를 신재생에너지로 메우고, 그 비중을 2020년 20%, 2050년까지 50%로 높이겠다고 했다. 2007년 이미 14.2%를 달성했다. 목표치를 2020년 30%, 2050년 80%로 높였다. 반면 원전 59기로, 전체 에너지의 76%를 기대고 있는 프랑스는 에너지 수입국으로 전락했다. 공급이 수요를 낳고, 수요가 더 큰 수요를 부른 결과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내놓으며 2030년 원전 비중을 전체 에너지의 59%로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7기 원전 건설 공사가 진행 중이고, 10기 원전을 추가로 지을 계획이다.

지금이 절박한 ‘탈핵’의 모멘텀

지난해엔 2030년까지 전세계에 430개 신규 핵발전소가 건설된다는 예측과 그 가운데 20%를 한국이 수주하자는 계획도 내놓았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이러한 수요 예측은 IAEA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원자력기구(NEA) 같은 핵에너지 관련 국제기구에서 예측하는 숫자보다 월등히 많다”고 지적한다. 아랍에미리트(UAE) 핵발전소를 수주했을 때 이 대통령은 긴급 생방송을 하기도 했다.

일본과 한국은 이렇듯 닮아 있다. 임성진 교수는 “예산 분배를 방해하기 때문에,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 정책이 양립하긴 어렵다”며 “선진국에선 중앙통제식 거대 시스템이 아니라 지역별 자립으로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이 신성장 동력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한다.

사실상 2000년대 중반 기후변화를 맞아 ‘대안 에너지’라는 신화가 더해지며 원전이 거듭 힘을 받는 추세였다.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은 “기후변화 문제로 스웨덴 같은 나라도 보수 세력에 의해 (‘탈핵’이라는) 정책 기조가 흔들렸던 게 사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다시 냉각될 조짐이다. 독일·중국·인도·브라질 등 여러 원전 국가에서 안전성 점검, 원전 계획 재검토 등으로 제동을 걸고 있다. 이헌석 대표는 “일본에서도 금기시되던 핵 공포가 시민사회에 공유되면서, 탈핵 방향으로 움직이는 모멘텀이 될 수도 있다”고 조심스레 내다본다.

한국만 “지진 6.5에 버틸 수 있는 설계가 돼 있다”거나 “일본보다 2배 안전하다”며 ‘안전 신화’를 강화하기 바쁜 모양새다. 1995년 한신 대지진 참사 뒤 일본 정부는 원전 내진설계를 재검검토록 지시한다. 결과보고서는 “어느 원전도 그 어떤 지진에도 괜찮다”고 말했다. 원전은 그대로이나, 지진은 진도 9까지 생동했다. 홍태경 연세대 교수(지구시스템과학)는 “한국에서 역사적으로 규모 6~6.5 이상의 큰 지진이 발생한 사례가 있고 미래에도 발생 가능하다”고 말한다.

환경운동연합 양이원영 국장은 “원전 1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3조원가량을 에너지 절약에 쓰는 게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도 훨씬 나을 것”이라며 “에너지 공급 확대 대신 에너지의 효율적 사용과 사용량 감축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일본의 오늘이 한국의 내일?

석광훈 녹색연합 정책위원은 “서구 주요 국가들이 스리마일·체르노빌 사고를 계기로 국민적 합의를 거쳐 탈핵의 길로 들어섰으나, 같은 기간 한국은 연이은 독재 정권들에 그같은 국민적 합의의 기회를 모두 박탈당해온 것”이라 말한다. 체르노빌 이후 전두환 정권만이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사에 영광 핵발전소 3, 4호기 건설을 발주했다.

3월15일 후쿠시마. 한 마을 주민들은 행방불명된 가족을 찾는 작업도 미룬 채 대피 명령을 따랐다. 이들을 인솔한 사쿠라이 시장은 카메라 앞에서 소리 질렀다. “최고의 쓰나미 피해를 입고, 정부 지시로 여길 왔다. 먹을 것도 없고, 되레 우리는 ‘오염지역인’ 취급을 당했다. 식량 확보를 위한 이동도 제한받았다. 도대체 국가의 방침이란 게 뭐냐.”

일본의 오늘은 한국의 내일이 될 것인가. “인류 최초로 한 장소에서 2기 이상의 상업용 발전소가 위험에 빠진 사례”(이헌석 대표)가 주는 교훈은 아픈 만큼, 깊을 것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도쿄=황자혜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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