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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10-02-03 10:21
지구 온난화, 과연 '과학 사기'인가? (한재각 부소장)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7,038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나. 몇 년 전 한국 사회를 휩쓸고 간 황우석 사태를 거치면서 '과학 사기'에 기겁을 했던 때문인지, 뭔가에 대해서 과학 사기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 귀를 쫑긋 하게 된다. 얼마 전의 일도 그렇다. 난데없이 지구 온난화에 대한 주장이 과학 사기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여러 언론을 통해서 크게 보도되었다.

만약 그런 의구심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황우석 박사의 과학 사기에 비교가 되지 않을 엄청난 일이 될 것이다. 수천 명의 과학자들이 관여하고 있는 국제적인 조직인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이 과학 사기 논란에 빠지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제 협상의 과학적 토대가 무너져 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작년 코펜하겐으로 전 세계에서 날아온 수백 명의 정부 대표와 수만 명의 시민들이 2주간 헛짓을 한 셈이 된다.

이것은 오히려 애교에 불과할지 모른다. 어떤 나라(영국)의 정부는 기후변화부를 만들어 장관을 임명했으며, 어떤 나라들(미국, 호주)에서는 기후 변화 문제를 정치 의제로 만들어 정권을 탈환하는데 이용하기도 했다. 또 어떤 지역(유럽)에서는 기후 변화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500억 달러 크기의 탄소시장을 만들었다. 이 모든 일의 근거가 IPCC의 과학 보고서였다. 그런데 이것이 과학 사기라니.

논란은 올해 초 IPCC가 공식적으로 보고서의 내용 일부가 잘못된 것임을 시인하면서 시작되었다. 2007년에 공개된 IPCC 4차 보고서에 '2035년경에는 히말라야 빙하가 녹아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예측이 과학적 검증 없이 포함되었고, 그것에 확고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알고 보니, 1999년에 한 과학 잡지(영국의 <뉴사이언티스트>지)에 실린 인도의 한 빙하학자, 시예드 히스나인의 주장을 IPCC가 충분한 검증 절차 없이 보고서에 포함시키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 때문에 노벨평화상을 받기까지 한 IPCC의 권위는 크게 흔들렸다. 가장 엄밀하고 신중한 과학적 검증 절차를 지켜서 전 지구적인 위기인 기후 변화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를 제공해줄 것이라고 생각한 IPCC의 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IPCC 측은 파장을 우려하면서, 이번 '실수'가 IPCC 보고서의 전체 신뢰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신뢰를 얻기는 힘들지만, '사소한' 사건으로 신뢰를 잃는 것은 쉬운 법이다. 게다가 이전에 있었던 다른 스캔들과 연결돼 인식되면서 논란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작년(2009년) 말 코페하겐 회의 직전 벌어진 '기후게이트' 사건이 그것이다. 영국의 이스트잉글리아대 기후연구센터의 컴퓨터가 해킹되면서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지구 온난화를 지지하는 학자들이 지구 온난화 반대론자들의 논문을 주요 학술지에서 배제하는 등 연구 결과를 특정 방향으로 몰아가려 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IPCC 보고서의 오류가 발견된 것이니, 장작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된 것이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세상사를 이해하는 가장 흔한 방법이 사회·경제적 이해관계가 어떻게 될까를 보는 것이다. 역시 언론은 서둘러 이번 사건을 그런 시각으로 조명하고 있다. 초점은 IPCC의 의장인 인도인 과학자 라젠드라 파차우리와 그가 소장으로 있는 에너지자원연구소(TERI)에서 빙하 연구 분과를 책임지고 있는 문제의 시예드 하스나인에 맞춰져 있다. 그들은 뉴욕의 카네기재단과 유럽연합으로부터 50억 원의 연구 자금을 받기 위해서, 검증이 되지 않은(혹은 잘못된 것을 알고 있으면서) '2035년 히말리야 빙하 소멸설'을 유포했다는 것이다.

우와, 이쯤 되면 이것이 과학 이야긴지, 정치 이야긴지 모를 지경이다. 검증되지 않은 사실 유포, 해킹에 의한 폭로, 그 뒤에 놓인 경제적 이해관계. 실험실에서 하얀 가운을 입고 자연에 대한 불편부당하고 객관적인 사실을 다루는 과학자의 세계는 사라지고, 국회 의사당이나 담배연기 자욱한 밀실의 타협적인 협상과 거래가 이루어지는 정치인의 세계로 들어서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현실은 이 두 세계가 뒤섞인 중간의 어디쯤이지 않을까 싶다. 대체 과학과 정치가 뒤섞이는 일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문제는 '과학적 불확실성' 때문이다. 제롬 라베츠와 같은 학자들은 현대 과학이 '탈정상 과학(Post-normal Science)'의 시대에 들어섰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16~17세기의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전(前) 과학시대에서 근대과학이라는 하나의 정상과학(Normal Science) 시대로 들어섰는데, 여기서는 주어진 패러다임 안에서 과학자들은 확실한 과학적 사실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기후 변화와 같은 문제에 접하면서 과학자들은 무엇을 알아내야 하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과학적 불확실성의 국면에 들어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이해관계는 대단히 큰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탈정상 과학의 시대라고 부른 것이다.

사실 IPCC에 참여하는 수많은 과학자들은 과학적 불확실성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IPCC 보고서는 "~이다"는 확실한 진술보다는 "~할 수 있다(might)"는 불확실한 추측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가득하다. 심지어 불확실성을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표까지 정리되어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IPCC 보고서는 과학적 불확실성 문제를 다루는 별도의 장까지 두고 있다.

이런 표까지 등장하고, 보고서에 불확실성 문제를 다루는 장을 별도로 할애하는 이유는 그만큼 불확실성의 문제가 크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라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너무나 많고, 또 그 시스템적인 성격으로 인해서 요소들 간의 관계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련된 요소들에 대해서 정확히 측정되었는지 뿐만 아니라, 정말 고려해야 할 요소들을 빠뜨리지 않고 충분히 고려했는지 혹은 그 사이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해서 예측 모델을 구축했는지 등의 폭넓은 문제가 과학적 불확실성을 야기한다.

그런데 과학학(STS)의 연구에 의하면 이런 불확실성과 관련된 측정, 보고, 검증 과정이나 예측 모델의 구축 과정은 순전히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과정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IPCC가 검토한 기온 상승에 관한 수많은 시나리오들은 모두 특정한 사회적 가정과 가치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며, 그 중에서 몇 가지 시나리오만 선택적으로 제시되는 것도 그렇다.

게다가 IPCC라는 기구 자체가 가진 성격으로 인해서 이는 더욱 증폭된다. 통상 IPCC는 자연과학자들의 기구로 이해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연과학자뿐만 아니라 경제학자 등의 사회과학자는 물론이거니와 각국 정부의 관료들도 참여하고 있는 기구이다. IPCC 자체가 여러 학문과 이해관계가 뒤섞여 있는 잡종적(hybrid) 존재인 것이며, 여기에서 과학적 사실 뿐만 아니라 경제·정치적 이해관계를 뒤섞으며 타협하고 조정해서 만들어낸 것이 IPCC 보고서인 것이다. 이는 IPCC가 이미 인정하고 있는 과학적 불확실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불확실성도 상당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을 염두에 두면, IPCC 보고서가 얼마나 오류에서 자유롭고 과학적 불확실성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문제의 초점이 아니다. 이런 지적은 과학적 검증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시키고 과학적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주장이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이번 논란은 미리 예방될 수 있었다. 과학적 검증 절차를 위한 엄격한 규범은 준수되어야 한다. 그러나 설사 히말라야 빙하의 녹는 시점을 놓고 그럴 듯한 과학적 근거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기후 변화가 갖는 과학적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는 없다. 오히려 기후 변화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다가, 이런 사건들로 인해서 대중의 신뢰를 한꺼번에 잃는 것이 더 큰 심각하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과학적 불확실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있다.

그런데 기후 변화에 대한 과학적 불확실성을 인정하자는 것을 곧바로 지구 온난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대론자 혹은 회의론자의 주장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안타깝게도 국내 언론의 대다수가 이런 식의 접근에 그치고 말았다. 단언하건대, 그럴 이유는 없다. 오히려 현재의 과학적 불확실성이 지구 온난화 경향의 심각성을 포착하는데 실패하고 주목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소위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에 대한 논의를 생각해볼 수 있다. 지구 온도의 상승이 어느 정도에 도달하면(여기가 티핑 포인트이다) 온도가 가파르게 상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극지방의 얼음이 급격히 녹으며, 동토 층의 온실가스가 폭발하듯 분출하면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우주항공국의 기후과학자인 제임스 핸슨이 제시하는 이 주장은 IPCC의 보고서와는 크게 다른데,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1988년의 350피피엠 정도로 돌아가지 않으면 이번 세기에 최소 6도까지 기온이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IPCC 보고서에 근거하여 유럽연합 등이 450피피엠을 유지하려는 입장에 반대하여, 일부 환경단체들이 '350 캠페인'을 벌이는 근거이기도 하다.

이런 핸슨의 주장 역시, '지구 온난화가 없다'는 (상당수가 석유 회사의 '진짜' 로비를 받는 과학자로 구성된) 회의주의자의 주장처럼, IPCC의 주류 과학자로부터 배척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가 초래하는 기후 변화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회의주의자의 낙관론뿐만 아니라 핸슨의 비관론 역시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

인류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경험하게 되는 과학적 불확실성 문제에 어찌 대응해야 할지 이제 배우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과학은 확실한 지식을 줄 것이고 그에 기반을 두고 의사결정을 하면 된다는 과거의 방식의 패턴으로는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대처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과학적 불확실성이 보다 일반적인 상황이며, 이에 따라서 우리는 '사전 예방의 원칙'에 따라서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우리가 IPCC 보고서 사건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은 기후과학에서 엄격한 과학적 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넘어선다. 기후 과학이 가지고 있는 과학적 불확실성을 우리가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서 성찰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는 한 보수신문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끔직한 예측만 반복"하는 경향과도, 또한 그 신문이 무책임하게 부추기고 있는 '환경 회의주의'와도 거리를 두는 것을 의미한다. <scRIPT type=text/javascript> document.onload = initFont(); </scRIPT>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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