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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정칼럼

 
작성일 : 22-01-19 16:30
기후를 파는 이들 / 임성희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장
 글쓴이 : 에정센…
조회 : 654  
기후를 파는 이들
[초록發光] 위기 앞에 셈법만…녹색과 회색 구분할 수 있어야


기후가 팔린다. 불티나게 팔린다. 간판이 되고, 명분이 되어 여기저기 내걸린다. 미룰 수 없는 인류 공동의 과제를 수행 중인 듯, 선한 행위임을 인증받을 수 있는 듯, 너도 나도 질세라 기후를 명분으로 내건다. 실상을 조금만 들여다 봐도 기후 보호와는 그 어떠한 관련이 없을뿐더러, 기후 위기를 조장하기까지 하지만, 기후라는 간판을 내건 사업인 이상 이를 문제삼는 것은 마치 기후 보호를 위한 전 지구적 사명과 거룩한 활동을 방해하는 것마냥 해석된다. 그렇게 기후로 장사하는 사람들은 도처에 넘쳐난다.

그림 출처 : Friends of the Earth

석탄화력발전소에 그린파워라는 이름을 붙이더니, '탄소 중립 석유' 구입에 동참하란 말에도 서슴이 없다. 석탄화력발전소에 어떤 첨단 기능을 더해도 탄소 배출, 기후 위기 대표 주자의 자리를 내어줄 수 없다. 석유 또한 온실가스의 주범, 화석 연료의 대표선수다. 이를 '탄소 중립 석유'로 네이밍해 친환경 비즈니스 모델로 표현하는 그들의 상상력과 뇌 구조가 놀랍다. 그런데 '착한 휘발유', '탄소 중립 석유'라는 불가능한 언어와 개념의 조합을 통해 회색을 녹색으로 둔갑시켜 소비자를 현혹하며 기후를 파는 행위가 규제되지 않는다.

얼마 전 환경부가 발표한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핵 발전은 배제되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며칠 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핵 발전을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과 투자로 잠정 분류한 녹색분류체계 초안이 국내에 알려졌다. 그린워싱도 이런 그린워싱이 없다. 아연실색할 일이다. 늦어도 2050년부터 핵 폐기물 처분장 운영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에 더해, 이번 초안이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재생에너지 전환에 앞장서는 유럽연합 회원국과 시민 사회의 반대를 넘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핵 발전 강국인 프랑스를 비롯한 몇몇 국가들의 이익에 기반한 녹색 분칠 시도가 여전히 기세를 부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후를 팔면서 핵 발전을 녹색으로 분류하려는 시도는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다가오는 국내 대선에서도 기후는 좋은 판매 수단이다. 기후를 의제로 한 정책선거라고? 아쉽게도 아니다. 유력 대권 후보들은 핵 발전을 지속하기 위해 기후라는 간판을 유효한 볼모로 세웠다. 국민의힘은 핵 발전을 정책적으로 옹호해온 당이라 새로울 것도, 놀라울 것도, 기대할 것도 없다. 탈원전 정책 폐기를 공공연히 언급하며 건설 중단된 원전 개발도 재추진하겠다고 강조해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탈원전 포퓰리즘으로 2020 탄소감축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착한 휘발유' '탄소 중립 석유'와 유사한 급의 억지 주장이다.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핵 발전량이 줄어든 적 없다는 사실은 이들에게 중요하지도 직시할 필요도 없나 보다. 해본적도 없는 탈핵이 문제라고, 그것도 기후를 앞세워 이야기하면 그만이라는 태도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제 슬그머니 탈핵이 아니라 '감원전'이라는 표현으로 바꿔쓰며 결국은 신규 핵발전소 건설 여부를 국민판단에 맡기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핵발전소를 짓겠다는 의지의 우회적 표현이다. 거대 양당의 후보가 당선되는 한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예고하는 어두운 정국이다. 그렇게 핵발전소 수출도, 크기만 작아진 핵발전소인 소형모듈원자로 개발도 지속할 될 것이다. 그것도 기후를 팔아서.

기후가 언제부터 녹색을 분칠하기에 딱 좋은 간판이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마도 기후를 화두로 삼는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위기는 늘 이를 활용하는 영리한 그룹, 장사치와 함께 공존해왔다. 기후 문제를 심각하고 시급한 대응이 필요한 것으로 여기는 활동은 기후라는 프레임으로만 세계를 바라볼 때 빠지는 편향 혹은 미숙함과 결합하기도 하고, 다른 무엇을 위한 수단이자 마케팅의 대상이 되면서 혼탁해지기도 한다. 거기에 편승하는 선한 게으름이나 안이한 대응 역시 기후 위기를 호재로 판단하는 자들의 것으로 수렴된다. 위기에 직면한, 아니 이미 위기인 기후와 더불어 더 오랜 시간 살아가야 할 미래의 생명들에게 묻고 싶다. 단지 기후라는 이름이 녹색이라는 명칭과 함께 분류 가능한 것이라 볼 수 있는지, 단호하게 녹색인 것과 아닌 것을 정확히 선별해달라고 요청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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